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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10회)
- 제10회 씻은 커피잔 두 개와 접시 두 개를 싱크대 선반에 올려놓은 뒤 미상 씨는 침실로 돌아왔다. 침대 헤드보드에 등을 기댄 채 희정 씨는 책을 읽고 있다. 책은 그녀의 배 부위에 놓인 침대용 책상에 고정된 책 지지대에 좌우로 펼쳐져 있다. 그녀는 지금 『종의 기원』을 읽는 중이다. 며칠 전 희정은 자신이 『종의 기원』을 다시 읽는 이유를 그 책의 대단원을 이루는 장엄한 문장 때문이라고 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많은 종류의 갖가지 식물, 숲속에서 노래하는 조류,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여러 가지 곤충, 그리고 습지의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모양을 관찰하고, 이러한 교묘하게 만들어진 형태가 서로 몹시 다르고 매우 복잡한 방법으로 얽혀 의존하고 있지만, 그러한 생물이 어느 개체나 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 작용하고 있는 법칙에 의해 생성되었다는 사실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취해진 이러한 제 법칙은 생식을 수반하는 성장, 생식 가운데 포함돼있는 유전 생활 조건의 간접 및 직접 작용과 함께 용불용에서 오는 변이성, 생존경쟁과 나아가서는 자연선택을 이끌고 마침내 형질을 분기시켜, 보다 소량 개량된 생물을 절멸시키는 높은 증가율 등에 있다. 이리하여 자연계의 투쟁에서, 기근과 사멸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생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대상, 즉 고등동물의 생성으로 직접 귀결된다. 생명이 자신의 여러 가지 능력과 함께 최초의 조물주에 의해 소수의 또는 하나의 형태로 불어 넣어졌다는, 그리고 이 지구가 불변의 동력 법칙에 따라 계속 회전하고 있는 동안에 그렇게 단순한 발단으로부터 가장 아름답고 가장 놀라운 무한한 형태가 발생하였고, 또 진화하고 있다는 견해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대단원의 문장이 왜 장엄한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미상 씨는 물어보지 않았다. 희정 씨의 독서열에 비해 미상 씨는 근래 들어 통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런 미상 씨에게 희정 씨가 물었다. "왜 소설을 쓰지 않죠?" "습관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진정한 소설가는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소설 쓰는 습관을 유지하는 사람인데." "저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미상 씨는 뒤로 몸을 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희정 씨가 말했다. "그럼 소설 쓰지 않는 소설가의 심정과 태도에 대한 소설이라도 쓰세요." 그래서 최근 미상 씨는 그런 소설을 죽 이어 쓰고 있다. 단편소설이고 제목은 '소설 쓰지 않는 소설가의 악몽'이다. 희정 씨의 주문대로 현재의 심정과 태도를 쓰기보다는 꿈에 대해 쓰기로 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 코코와 초코에게 간식을 차려주고, 샤워를 하고, 간단히 아침밥을 먹고, 서너 시간 잠을 잔 뒤 이곳으로 다시 내려와 복지관에서 도시락으로 배달하는 희정 씨의 아점밥을 차려줘야 한다. 파카와 모자를 들고 서서 눈인사를 하는 미상 씨에게 희정 씨가 묻는다. "변이의 법칙에서 다윈이 뭐라고 말하는지 요약해 줄까요?" 그녀는 자신 앞에 펼쳐진 책을 오른손 검지로 가리켰다. 이마의 주름살을 추겨 올리며 웃는 미상 씨에게 희정 씨는 『종의 기원』제5장의 내용을 요약했다. "이 장에서 다윈은 변이가 생물체의 유전적 특성에서 발생하고, 이 변이가 세대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해요. 그리고…… 이 변이가 괴상하거나 우연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지만 이러한 변이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 점진적이나마 종의 변이가 가능하다고 해. 지속성은 우연성의 합이란 말이지." 희정은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사랑한다는 뜻이었다.■ <편집자주> 심상대는 196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고 고려대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0년《세계의 문학》봄호에 단편소설 세 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소설집 여섯 권과 산문집 두 권, 중편소설 『단추』와 장편소설 『나쁜봄』,『앙기아리 전투』,『힘내라 돼지』를 출간했습니다. 2001년 단편소설「美」로 현대문학상, 2012년 중편소설「단추」로 김유정문학상, 2016년 장편소설『나쁜봄』으로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프로필 요약 출생: 1960년 1월 25일, 강원도 강릉시. 학력: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수료. 등단: 1990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소설 3편 발표. 주요 수상 2001년 현대문학상(단편 「美」). 2012년 김유정문학상(중편 「단추」). 2016년 한무숙문학상(장편 『나쁜봄』). 주요 작품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사랑과 인생에 관한 여덟 편의 소설 』,『명옥헌』, 『망월』, 『심미주의자』, 『떨림』, 장편 『나쁜봄』, 『앙기아리 전투』, 『힘내라 돼지』, 중편 「단추」 등. 작품세계 짤막 소개 심상대의 소설은 치밀한 문장과 심미적 감각,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이 결합된 "심미주의자"적 세계관으로 자주 설명됩니다. 초창기 단편에서는 감각적이고 실험적인 서사와 미학이 두드러졌고, 「단추」 같은 중편에서는 비정규직 청년, 시간강사, 가난과 실업 등 현실의 불안을 다루면서도 꿈과 악몽, 알레고리를 통해 삶의 근원적 의미를 묻는 방식이 특징입니다. 장편 『나쁜봄』과 『힘내라 돼지』에서는 개인의 죄의식, 사회적 폭력, 수용소·교도소 같은 극단적 공간을 배경으로 절망 속에서 인간 존엄과 희망을 찾는 서사를 보여 줍니다. 전반적으로 현실의 피폐함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고독과 사유를 통해 고통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탐구하는 냉정하면서도 서늘한 문학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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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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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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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다우 400P 급락, 5만선 붕괴⋯AI 공포 확산에 '전면 리스크오프'
- 뉴욕증시가 12일(현지시간)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산업 구조 붕괴 우려가 재점화되면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다우지수는 5만선을 내주고 400포인트 이상 밀렸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1% 넘게 급락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406.98포인트(-0.81%) 하락한 4만9714.42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500포인트 가까이 떨어지며 5만선 아래로 내려왔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75.89포인트(-1.09%) 하락한 6865.58, 나스닥 종합지수는 394.51포인트(-1.71%) 내린 2만2671.95를 기록했다.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는 분기 가이던스 실망 여파로 12% 급락했다. 모바일 광고업체 앱러빈은 실적 발표 이후에도 18% 넘게 하락했다. 소프트웨어주 전반이 약세를 보였고, iShares Expanded Tech-Software ETF(IGV)는 2% 하락하며 최근 고점 대비 31% 낮은 수준으로 밀렸다. AI가 화물 물류·부동산·금융 등 기존 산업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됐다. C.H. 로빈슨과 RXO는 20% 이상 급락했고, CBRE는 13% 넘게 떨어졌다. 다우 운송지수는 5% 이상 하락했다. 투자자들은 방어주로 이동했다. 월마트는 4%, 코카콜라는 1% 이상 상승했다. 소비재와 유틸리티 업종은 각각 약 2% 올랐다. 은 가격은 8~9% 급락하며 온스당 76달러대로 밀렸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4.102%까지 하락했다. 시장은 14일 발표될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주시하고 있다. [미니해설] "AI는 기회인가, 구조 붕괴인가" 이번 급락의 중심에는 'AI 공포'가 있다. 단순한 밸류에이션 조정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수익 모델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을 지배했다. 최근 몇 주간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먼저 충격을 받았다. 자동화·오픈소스 에이전트 확산 가능성이 제기되며 기존 기업용 소프트웨어의 가격 결정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세일즈포스는 연초 이후 약 31% 하락했고, 오토데스크도 올해 23% 떨어졌다. IGV ETF는 고점 대비 31% 낮아지며 약세장에 머물고 있다. 앱러빈은 분기 실적과 가이던스가 시장 기대를 웃돌았음에도 18% 급락했다. 모건스탠리는 광고 타기팅 혁신 속도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유지했지만, 공포 심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베어드의 로스 메이필드 전략가는 CNBC에 "군중 심리에 가깝다. 일단 팔고 나중에 분석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운송·물류까지 번진 충격 이번 하락의 특징은 충격이 기술주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AI 기업 알고리듬 홀딩스가 화물 효율화를 돕는 'SemiCab' 도구를 공개하자, 운송·물류주가 직격탄을 맞았다. C.H. 로빈슨과 RXO는 20% 이상 급락했고, J.B.헌트와 XPO, 익스피다이터스 인터내셔널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다우 운송지수는 5% 넘게 밀리며 지난해 4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WSJ는 "AI 공포가 소프트웨어, 금융에 이어 운송 업종까지 확산됐다"고 전했다. 부동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업용 부동산 중개업체 CBRE는 13.5% 급락했다. 오펜하이머는 코로나와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를 제외하면 이 같은 낙폭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AI 확산이 고용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경우 오피스 수요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금융·플랫폼·대형 기술주도 흔들 금융주도 약세 흐름을 이어갔다. 모건스탠리 등 자산관리 중심 금융사는 AI가 자산관리·보험·백오피스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압박을 받았다. 아마존은 2% 이상 하락하며 8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 기간 낙폭은 16%를 넘는다. 애플은 4% 가까이 밀렸다. 시스코는 실적 발표 후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비용 부담과 기대 대비 보수적 가이던스가 부각되며 12% 급락했다. 다만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 웰스파고 등 주요 증권사는 '매수' 또는 '비중확대' 의견을 유지했다. 안전자산 선호와 CPI 변수 이날 시장은 전형적인 '리스크오프' 흐름을 보였다. 국채로 자금이 몰리며 10년물 금리는 4.102%까지 하락해 두 달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원유 가격은 3% 가까이 떨어졌다. 투자자들은 14일 발표될 1월 CPI를 주목하고 있다. 시장 예상치는 전년 대비 2.5% 수준이다. 메이필드 전략가는 "고용지표가 강했기 때문에 CPI가 다소 덜 중요해졌지만, 수치가 크게 상회할 경우 시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CPI가 예상치를 다소 밑돌 경우 단기적 '리스크온' 반등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AI 확산이 생산성 혁신인지, 기존 산업의 수익 구조를 훼손하는 파괴적 전환인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시장은 분명히 후자 가능성에 베팅했다. 5만선을 돌파했던 다우는 하루 만에 무너졌고, 기술·운송·부동산이 동시에 흔들리며 공포의 범위는 넓어졌다. 시장은 이제 AI가 만들어낼 '수혜주'보다 '피해 업종'을 먼저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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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다우 400P 급락, 5만선 붕괴⋯AI 공포 확산에 '전면 리스크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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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밀리터리] "푸틴의 '오레슈니크' 더는 안 두렵다"⋯유럽, 마하 6 '극초음속의 창'으로 반격
- 북극권의 정적이 감도는 노르웨이 안도야(Andøya) 우주 센터. 지난 2월 3일, 백색의 설원을 찢는 굉음과 함께 유럽 방위산업의 새로운 역사가 쏘아 올려졌다. 독일과 영국의 합작 방산 스타트업 '하이퍼소니카(Hypersonica)'가 개발한 프로토타입 미사일이 마하 6(시속 7400km)의 속도로 300km를 비행하며 목표 명중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신무기 테스트가 아니었다. 지난 4년간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오레슈니크(Oreshnik)'라는 극초음속 미사일로 유럽을 핵 인질로 삼으려 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유럽의 첫 번째 '기술적 응답'이자 '주권 선언'이었다. 유로뉴스(Euronews)는 11일(현지 시각) '유럽의 방금 테스트된 극초음속 미사일, 러시아의 오레슈니크에 대한 해답인가?'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유럽이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독자적인 극초음속 타격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결정적인 이정표를 세웠다고 대서특필했다. 푸틴의 '오레슈니크' 쇼크…유럽을 깨우다 유럽이 이토록 절박하게 극초음속 기술에 매달린 배경에는 러시아의 '오레슈니크'가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24년 11월 드니프로에 이어, 올해 1월 8일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Lviv)의 핵심 기반 시설을 오레슈니크로 타격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에 따르면 이 미사일은 마하 10(시속 약 1만 3000km) 이상의 속도로 낙하해 요격이 불가능했다. 재래식 탄두와 핵탄두를 모두 탑재할 수 있는 이 괴물은 사거리가 5500km에 달해 런던과 베를린을 포함한 유럽 전역을 사정권에 둔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유럽과 미국에 대한 경고"라고 우려했을 만큼, 오레슈니크는 유럽 안보의 '트라우마'였다. 11일 독립 온라인 미디어 복스(Vox) 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 미사일 시스템을 벨라루스에도 배치했다. 벨라루스는 러시아 우방국으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하이퍼소니카의 이번 시험 비행 성공은 "우리도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적을 타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러시아의 비대칭 전력 우위를 상쇄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전차 군단'…국방비 160조 시대 개막 이번 쾌거의 뒤에는 독일의 강력한 재무장 의지가 깔려 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독일 총리는 올라프 숄츠 전 총리의 미온적인 태도를 폐기하고, '유럽 최강의 재래식 군대' 건설을 천명했다. 독일의 2026년 국방 예산은 약 1082억 유로(약 180조 원)로 책정됐다. 2021년 대비 두 배 이상 폭증한 수치다. 메르츠 총리는 2029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3.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주목할 점은 '독자 노선'이다. 독일 정부는 이번 국방 조달 계약의 92%를 유럽 기업에 몰아주고, 미국 기업 비중을 8%로 제한했다. 트럼프 대통령 1기 시절부터 이어진 미국의 고립주의 우려와 우크라이나 지원 피로감 속에서, 더 이상 미국의 '우산'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결과다. 스타트업이 쏘아 올린 공…'가격 파괴'로 2029년 실전 배치 하이퍼소니카는 거대 방산 기업이 아닌, 옥스퍼드대 박사 출신의 필립 케르트와 마크 에벤츠가 2023년 12월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기존 방산 프로그램 대비 비용을 80% 이상 절감하고, 개발 기간을 '년' 단위에서 '월' 단위로 단축하는 모듈형 아키텍처를 선보였다. 공동 창업자들은 성명을 통해 "2029년까지 유럽 최초의 주권적(sovereign) 극초음속 타격 능력을 실전 배치할 것"이라며 "이는 NATO와 영국의 극초음속 프레임워크인 2030년 목표보다 1년 빠르다"고 자신했다. EU 방위기금(EDF) 역시 2026년 프로그램에 극초음속 대응 및 요격 능력 확보를 위해 1억 6800만 유로(약 2889억 원)를 배정하며 이들의 도전을 뒷받침하고 있다. 신냉전의 최전선, '극초음속'으로 이동하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테스트가 미·유럽 대 중·러의 군사력 균형을 가늠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권 내에서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기동하며 기존 미사일 방어망(MD)을 무력화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현대전의 '게임 체인저'다. 러시아의 오레슈니크가 유럽의 목덜미를 겨누고 있는 지금, 유럽은 하이퍼소니카라는 '방패이자 창'을 들고 응전에 나섰다. 4년째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포화 속에서, 유럽의 방위산업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자강(自强)'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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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밀리터리] "푸틴의 '오레슈니크' 더는 안 두렵다"⋯유럽, 마하 6 '극초음속의 창'으로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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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8회)
- 제8회 희정 씨는 아름답다. 희고 도드라진 이마와 가냘픈 손 그리고 노래하느라 벌어진 붉은 입술 위로 색색의 미러볼 불빛이 지나간다. 인생에 있어 고난의 시간은 짧게나마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희정 씨에겐 지금이 그때라고 미상 씨는 생각했다. 그녀는 찬송가를 부른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미러볼에서 튀어나온 푸른 빛, 초록 빛, 붉은 빛, 노란 빛, 보라 빛 별은 희정 씨의 흰 패딩 코트와 검은 원피스 위에서 푸른 동그라미, 초록 동그라미, 붉은 동그라미, 노란 동그라미, 보라 빛 동그라미로 흘러 지나간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노래의 끝에서 두 사람은 함께 아멘송을 불렀다. 아멘 천국의 가장 가운데, 순결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에는 노랫소리가 그치지 않으리라고 미상 씨는 생각했다. 주님의 땅에 넘실대는 주님의 뜻은 인간의 윤리와 인간의 정의가 아니라 인간의 노랫소리와 인간의 웃음소리라는 사실을 희정 씨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상 씨는 오른손을 뻗어 희정 씨의 불편한 왼손을 거두어 맞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가스펠 송을 합창했다. 당신이 외로이 홀로 남았을 때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 주님은 우리 상한 맘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희정 씨가 마이크를 잡은 오른손을 미상 씨를 향해 뻗었다. 마이크 잡은 왼손으로 미상 씨는 그 손을 잡았다. 둥글게 맞잡은 손과 손을 흔들어 두 사람은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비겁하지 말자, 배신하지 말자 그리고 사랑하자, 하고 미상 씨는 생각했다. 그러한 미상 씨의 눈을 바라보면서 희정 씨는 생각했다. 사랑하자, 사랑하자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자. 조용히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당신이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두 사람은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두 사람은 가냘픈 한 잎 한 잎의 풀잎이다.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이 달려가는 쪽으로 누워 바람의 손길을 만끽한다. 어떤 바람은 집단의 일원이 되라고 꼬드기지만 둘은 저마다 한 줄기 한 줄기 풀잎으로 남아 바람의 진행을 즐긴다. 그 어떤 방향으로 휘몰아치던지 풀잎은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같은 방향으로 함께 눕는 또 하나의 풀잎이 곁에 있고 그리고 그들의 억센 뿌리는 깊은 땅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희정 씨, 배가 고파요." 그래서 미상 씨는 술을 마셨다. 차고 톡 쏘는 캔맥주 한 잔이었다. 그보다 적은 한 모금도 안 되는 양이지만 희정 씨도 맥주를 마셨다. 노래하듯 술 취한 목소리로 희정 씨가 말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미상 씨만을……." 두 사람에겐 참회도 용서도 필요 없었다. 그들에게는 진실과 희생이 사랑이었고 사랑이 구원이었으며 그 구원은 한없는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깊은 산속 외딴집, 된장찌개 냄새 풍기는 개다리밥상 앞에 마주 앉을 수만 있다면 두 사람은 그 어떤 은총도 그 어떤 영광도 필요하지 않았다.■ <편집자주> 심상대는 196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고 고려대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0년《세계의 문학》봄호에 단편소설 세 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소설집 여섯 권과 산문집 두 권, 중편소설 『단추』와 장편소설 『나쁜봄』,『앙기아리 전투』,『힘내라 돼지』를 출간했습니다. 2001년 단편소설「美」로 현대문학상, 2012년 중편소설「단추」로 김유정문학상, 2016년 장편소설『나쁜봄』으로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프로필 요약 출생: 1960년 1월 25일, 강원도 강릉시. 학력: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수료. 등단: 1990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소설 3편 발표. 주요 수상 2001년 현대문학상(단편 「美」). 2012년 김유정문학상(중편 「단추」). 2016년 한무숙문학상(장편 『나쁜봄』). 주요 작품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사랑과 인생에 관한 여덟 편의 소설 』,『명옥헌』, 『망월』, 『심미주의자』, 『떨림』, 장편 『나쁜봄』, 『앙기아리 전투』, 『힘내라 돼지』, 중편 「단추」 등. 작품세계 짤막 소개 심상대의 소설은 치밀한 문장과 심미적 감각,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이 결합된 "심미주의자"적 세계관으로 자주 설명됩니다. 초창기 단편에서는 감각적이고 실험적인 서사와 미학이 두드러졌고, 「단추」 같은 중편에서는 비정규직 청년, 시간강사, 가난과 실업 등 현실의 불안을 다루면서도 꿈과 악몽, 알레고리를 통해 삶의 근원적 의미를 묻는 방식이 특징입니다. 장편 『나쁜봄』과 『힘내라 돼지』에서는 개인의 죄의식, 사회적 폭력, 수용소·교도소 같은 극단적 공간을 배경으로 절망 속에서 인간 존엄과 희망을 찾는 서사를 보여 줍니다. 전반적으로 현실의 피폐함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고독과 사유를 통해 고통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탐구하는 냉정하면서도 서늘한 문학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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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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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의 시네bar 천국] 영화 '미세리코르디아'-욕망 없는 자비가 가능할까
- 바쁜 일상 속, 개봉작을 놓친 당신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 <이수정의 시네bar 천국>은 혼술하며 OTT 영화를 보는 당신을 위한 코너다. 퇴근 후 와인 한 잔, 주말 저녁 위스키 한 잔 곁들여 스크린을 응시하는 시간. 혼자 마시는 술이 외로움을 뜻하지 않듯, 혼자 보는 영화는 고독을 의미하지 않는다. 코너의 끝에서 영화와 페어링되는 술 한 잔을 제안하는 것은 덤. 자, 잔을 채우시라. 스크린이 당신을 기다린다. <편집자주> 영화<미세리코르디아>-욕망 없는 자비가 가능할까 욕망이란 모순덩어리다. 불가해하고 결코 충족을 모른다. 이 다스려지지 않는 감정 때문에 오늘도 잠 못 이루는 당신, 영화 <미세리코르디아(2005)>가 주는 위안에 몸을 맡기는 것은 어떨까? 라틴어로 '자비'를 뜻하는 제목을 가진 <미세리코르디아>는 조용하면서도 집요하게 인간 욕망을 파고든다. 감독 알랭 기로디의 렌즈는 늘 '신성'과 '육체' 사이의 경계에 머물러 있다. <미세리코르디아>에서도 그의 관심사는 다르지 않다. 평화롭고 경건해 보이는 공동체의 표면 아래, 감독은 신앙, 혹은 체제라는 이름으로 억눌린 욕망의 거대한 저수지를 발견한다. 제빵사 장피에르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주인공 제레미가 프랑스의 시골 마을을 찾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이 작은 마을은 욕망이 없는 곳이 아니다. 욕망을 보이지 않게 관리하는 곳이다. 쇠락하고 외진 시골 마을은 어떤 욕망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감춰진 욕망은 더욱 강렬한 결핍과 갈증을 드러낸다. 제레미의 등장으로, 공동체가 오랫동안 감춰온 욕망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제레미는 공동체를 비추는 거울이자 숨겨진 욕망을 해방하는 촉매제다. 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버섯의 이미지는 욕망의 메타포다. 버섯은 어둠과 습기 속에서만 자라며 보이지 않는 지하의 광대한 균사체로 연결되어 있다. 공동체가 욕망을 억누르려 할수록, 욕망은 더욱 강하게 되살아난다. 버섯은 흙 속 깊이 묻은 욕망이 다시 자라 자비의 얼굴을 하고 피어나는 역설을 상징한다. 뽑아도 뽑아도 계속 자라나는 버섯은 ‘억압된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선언이다. 제레미는 장피에르의 아들이자 자신의 친구인 뱅상을 우발적으로 죽인다. 시신에 덮은 흙에서 자라난 버섯이 그의 죄를 고발한다. 제레미는 범죄의 흔적을 감추려 버섯을 채취하고, 공동체는 버섯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 그들은 그렇게 죄의식을 교환한다. 이 영화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신부가 발기한 모습을 드러낼 때다. 영화 초반, 신부는 신의 언어로 무장한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제레미와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의 신체는 신의 통제를 벗어난다. 장피에르의 장례식에서 그가 한 말을 기억하자. 그는 죽은 장피에르에게 공동체를 중재해 달라고 부탁한다. 우리에게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제레미를 통해 문자 그대로 실현된다. 신부의 발기한 신체는 신의 언어가 욕망을 영구적으로 가둘 수 없음을 선언한다. 이는 신앙의 타락이 아니다. 신의 거룩한 언어가 무너지는 그 자리에서, 인간의 진정한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장피에르의 미망인 마르틴은 제레미를 원하면서도 '그가 떠나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 말에서 우리는 제레미에 대한 욕망을 본다. 욕망이 없다면 왜 떠나야 할까? 말과 행동의 괴리가 이미 욕망의 우회로이며, 그 우회 속에서 욕망은 더욱 명확해진다. 영화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찾아 헤맨다. 영화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한없이 운전하는 행위를 통해 욕망이란 우회로를 보여준다. 만남은 항상 지연되고, 비껴가거나 차단된다. 만남의 지연은 비극이 아니라, 욕망 자체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이다. 욕망은 충족되는 순간 소멸하기 때문이다. 만남을 지연시키고 우회시킴으로써, 오히려 욕망은 영속성을 얻는다. 이 영화의 진정한 비극은 '만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더 복잡한 비극은 '만나려 할수록 더욱 우회하게 되는 욕망의 구조 자체'다. 이것은 욕망이라는 조건 자체에 내재한 모순이다. 자, 이 영화의 궁극적 질문으로 돌아가자. 욕망 없는 자비가 가능한가? 사람들은 자비를 이타성과 희생의 궁극적 형태로 이해해 왔다. 하지만 이는 환상이다. 자비는 늘 '선한 사람이고자 하는' 욕망,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자'라는 자기 확인의 욕망에 가깝다. 공동체의 자비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기능하지 않았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욕망을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행위 자체가 욕망의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는 것. '나는 욕망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은 이미 욕망이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 욕망이 없다면 굳이 그것을 거부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따라서 공동체의 엄격한 자제는 역설적으로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를 증명한다. 전통적 도덕 체계에서 욕망을 죄로 간주했다. 극복해야 할 대상, 억압해야 할 본능으로 취급되었다. 영화가 욕망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욕망은 죄가 아니다. 욕망은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조건이다. 욕망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단순한 기계? 무의미한 신체? 욕망이 있기에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결단할 수 있으며, 역사를 만들 수 있다. 욕망은 버섯처럼, 묻혀도 다시 자라난다. 완전히 제거될 수 없고, 영구적으로 억압할 수도 없다. 욕망은 인간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욕망을 가진 우리에게 윤리는 어떻게 가능한가? 영화의 대답은 도발적이다. 윤리는 욕망을 거부함으로써가 아니라, 욕망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선택함으로써 가능하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마주 보고,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윤리적 주체가 된다. 자비는 신의 거룩한 언어를 빌린 인간의 가장 진솔한 고백이며, 우리는 고백하기 위해 먼저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 <미세리코르디아>는 불편한 영화다. 우리가 외면하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을 침묵과 절제를 통해 조용히 비추어내기 때문이다. 동시에 영화는 우리를 끝없이 실소하게 하는 블랙 코미디이기도 하다. 모든 상황은 부조리하다. 마르틴은 아들의 실종보다 제레미가 떠날지를 걱정한다. 공권력은 불쑥불쑥 개인의 공간을 침범한다. 심지어 제레미와 신부가 누운 사제관까지. 관객을 관음증에 동참하게 하는 주체는 어디에나 등장하는 경찰들이다. 숲속, 거리, 한적한 주차장은 제레미의 욕망을 실현하게끔 하는 침실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제레미의 곁에 누운 마르틴은 '오늘은 여기까지'라며 욕망을 지연시킨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욕망하면서도 선한 인간으로 남고 싶고, 거짓을 말하면서도 진실을 추구하려 하는 인간.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인간의 참된 모습이다. 자살하려는 제레미를 말리는 신부의 말은 언뜻 궤변으로 들린다. 하지만 당신은 그 말에 숨은 진실을 외면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다 학살의 책임자고 우리는 그것을 안다." 자비를 베푸는 심급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그 순간에서조차 신부는 제레미에 대한 적나라한 욕망을 드러내기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자비에는 어떤 욕망이 숨어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 욕망을 인정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뱅상이 실종된 상황에서도 잘 차려진 식탁에서 와인을 마신다. 억압된 욕망이 발효되듯, 와인 역시 통제된 부패의 산물이다. 이 영화에는 루아르의 자연 와인이 어울린다. 특히 티에리 퓌즐라의 '르 클로 뒤 튀-부프'처럼, 최소한의 개입으로 포도 본연의 야생성을 살린 와인이다. 맑고 투명하지만 동시에 미세한 탁함을 간직한, 정제되지 않은 욕망의 맛이다. 이 와인에 버섯 샐러드를 안주로 곁들일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강심장이다. -이수정 영화 칼럼리스트- <편집자주> 이수정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수학했다. 서평가이자 영화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영화와 문학을 주제로 한 행사(북토크, 강연 등)를 기획하고, 오이코스 인문연구소에서 <영화잡담회>를 진행한다. 극장보다 거실에서, 팝콘보다 와인잔을 든 채로 더 많은 영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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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의 시네bar 천국] 영화 '미세리코르디아'-욕망 없는 자비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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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의 시의 정원-제왕나비
- 제왕나비 - 아내에게 최동호 파도 위로 호랑무늬 날개를 펼치며 대지를 움켜쥔 나비가 날고 있다 생명의 빛을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이 장엄한 행렬은 생사를 건 운명적 비행 대양 너머 저 멀고 먼 산언덕에서 작은 들꽃 무리들이 피었다 또 지면서 비바람 헤치고 찾아올 나비를 기다리고 있을 때 사막의 하늘 높이 날아 지친 나비에게 태고의 영웅들이 남긴 장엄한 메아리는 산봉우리를 타고 가는 바람의 혼을 실어 주고 구름 뒤의 달은 나뭇잎에 매달려 쪽 잠자던 애벌레가 다시 고치에서 부활하여 날아오를 황금빛 영혼의 호랑무늬 날개를 지켜보고 있다 날개를 앓는 시간 계절이 바뀌는 틈새마다 까닭 없이 뼈마디가 저려오는 건, 아주 오래전 우리가 날개를 가졌던 짐승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도시의 빌딩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유독 매섭게 느껴지는 밤이면, 나는 습관처럼 등 뒤를 더듬어 본다. 퇴화해버린 날개 자리가 욱신거리는 것은, 저 먼 대양 너머에서 누군가 나를 간절히 부르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우리는 저마다 가슴 속에 보이지 않는 지도 한 장을 품고 산다. 그 지도는 편안하고 안락한 아스팔트 길이 아니라, 파도가 치고 모래바람이 부는 위태로운 경로를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길을 잃고, 매번 흔들리며, 때로는 주저앉아 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그저 하루를 버텨내기에 급급한, 작고 초라한 존재일 뿐인데 왜 내 안의 나침반은 자꾸만 아득한 곳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지만 생각해보면 기적 아닌 삶이 어디 있으랴. 연약한 날개 하나로 대륙을 횡단하는 저 미물들의 비행이 서러운 본능이라면, 무거운 생의 짐을 지고 ‘오늘’이라는 사막을 건너는 우리의 걸음은 숭고한 투쟁이다. 근육의 힘이 아니라 그리움의 힘으로, 우리는 기어이 나아간다. 지금 당신이 웅크리고 있는 그 캄캄한 침묵의 시간들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구름 뒤에 숨은 달이 묵묵히 밤을 지키듯, 그 어둠은 당신 안의 황금빛 날개를 몰래 벼리고 있는 시간일 테니. 꽃이 피고 지는 일이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수신호이듯, 당신의 고단함도 결국은 어딘가에 닿기 위한 가장 뜨거운 날갯짓임을 믿는다. 바람이 차다. 부디 이 바람을 타고,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로 무사히 건너가기를. <편집자 주> 프로필 2013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미래서정문학상, 조지훈문학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한국예술위원회 문학창작산실 지원금 수혜. 웹진 시인광장 디카시 주간, 유튜브 (시읽는고양이) 크리에이터. 주요 작품 시집 『힘없는 질투』, 디카시집 『편복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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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의 시의 정원-제왕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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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밀리터리] "세계 최강이라더니 종이 호랑이였나"⋯우크라이나에서 무너진 獨 레오파드 2의 굴욕
- '지상전의 왕자'로 불리며 세계 최강의 성능을 자랑하던 독일의 주력 전차 레오파드 2(Leopard 2)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500마력의 강력한 엔진과 정밀한 화력 통제 시스템으로 무장했지만, 드론이 지배하는 현대 소모전의 양상과 제병협동(Combined Arms) 작전의 부재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명품 무기'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안보 전문지 19포티파이브(19FortyFive)는 8일(현지시간) '레오파드 2의 실패: 왜 세계 최고의 전차가 우크라이나에서 실패하고 있나'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서방제 전차들이 직면한 딜레마를 집중 조명했다. 스펙은 최강…그러나 전장은 달랐다 독일 크라우스-마파이(Krauss-Maffei)가 개발한 레오파드 2는 1979년 실전 배치 이후 줄곧 서방 세계 전차의 표준이자 정점으로 군림해 왔다. 120mm 라인메탈 활강포의 파괴력과 뛰어난 기동성, 복합 장갑의 방호력은 미군의 M1A2 에이브럼스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독일 외교협회(DGAP)의 크리스티안 몰링 박사는 "레오파드 2는 심리적으로 승무원들에게 안정감을 줄 만큼 강력한 장갑과 기동성을 갖춘 전차"라고 호평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방에 가장 먼저 요청한 무기도 바로 이 전차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진흙탕 전장은 카탈로그 스펙이 통하는 곳이 아니었다. '나 홀로 전차'의 비극…"하늘이 뚫렸다" 레오파드 2의 실패 원인은 전차 자체의 결함보다는 '운용 환경'에 있다. 본래 레오파드 2는 공군 전투기의 공중 엄호와 보병, 포병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제병협동 작전' 하에서 고속 기동전을 펼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은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이 구축한 견고한 다층 방어선과 지뢰밭 앞에서, 항공 지원 없는 레오파드 2는 값싼 자폭 드론과 대전차 미사일의 훌륭한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매체는 "러시아의 드론 떼(Drone swarms)와 대전차 미사일 공격에 전차들이 고립된 채 노출되면서, 세계 최고의 전차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정비 불능…"고장 나면 고칠 사람이 없다" 또 다른 치명적인 약점은 '유지 보수'다. 레오파드 2와 같은 첨단 전차는 정교한 전자 장비와 예민한 엔진을 다루기 위해 고도로 훈련된 정비 인력과 특수 공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급하게 투입된 우크라이나 병력은 이를 감당할 숙련도가 부족했다. 전장의 포화 속에서 복잡한 수리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사소한 고장에도 전차를 유기하거나 후방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는 뒤늦게 투입된 미군의 M1 에이브럼스 전차도 겪고 있는 동일한 문제다. 미군이 에이브럼스 지원을 주저했던 이유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전차 무용론'인가, 전술의 부재인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전차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전차는 여전히 지상전에서 화력과 기동성, 방호력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장은 '드론의 시대'에 전차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무리 비싸고 강력한 전차라도, 하늘을 지켜줄 방공망과 보병의 지원 없이는 '값비싼 고철'에 불과하다는 냉혹한 교훈을 레오파드 2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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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밀리터리] "세계 최강이라더니 종이 호랑이였나"⋯우크라이나에서 무너진 獨 레오파드 2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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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가상자산 시세조종 '고래·가두리·경주마' 정조준⋯IT 사고엔 징벌적 과징금
-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시장질서 교란 행위와 금융권 IT 리스크를 핵심 과제로 삼아 전방위 감독에 나선다. 금융감독원은 9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금감원은 대규모 자금을 동원한 '대형고래' 시세조종, 특정 거래소 입출금 중단을 악용한 '가두리' 수법, 단기간 가격 급등을 유도하는 '경주마' 수법 등을 고위험 분야로 지정해 기획조사를 실시한다. 시장가 API 주문을 활용한 시세조종과 SNS 허위정보 유포도 집중 점검 대상이다. 이상 급등 종목을 초·분 단위로 분석해 혐의 구간과 연관 그룹을 자동 적출하는 시스템과 AI 기반 텍스트 분석 기능도 개발한다. 가상자산 2단계 입법에 대비해 디지털자산기본법 도입 준비반을 신설하고, 발행·거래지원 공시체계와 인가심사 매뉴얼을 마련한다. 거래소 수수료 구분 관리와 공시 세분화도 추진한다. 민생금융범죄 대응도 강화한다. 불법사금융·보이스피싱에 대해 특별사법경찰 유관협의체를 구축하고, 통신·금융사 정보 공유를 통한 AI 기반 조기 차단 시스템을 도입한다. IT 사고에는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고, CEO와 CISO의 보안 책임을 높이는 감독 규정 개정도 추진한다. [미니해설]가상자산·IT 리스크 동시 압박…금감원, '시장질서 회복' 감독 기조 전환 금융감독원의 올해 업무계획은 가상자산과 IT 리스크를 더 이상 주변 과제가 아닌 '시스템 리스크'로 본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행위를 선별해 사후 제재에 그치지 않고, 사전 탐지와 예방 중심으로 감독 체계를 재편하겠다는 신호다. 가상자산 부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조사 대상의 구체화다. '대형고래·가두리·경주마'로 대표되는 수법은 이미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왔지만, 그간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금감원이 이를 공식적으로 고위험 분야로 특정한 것은 기획조사의 상시화를 의미한다. 특히 API 주문을 활용한 시세조종과 SNS 허위정보 유포는 개인 투자자가 피해를 인지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감독당국이 기술적 수단을 동원해 선제 대응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AI를 활용한 초·분 단위 분석 체계는 감독 방식의 전환을 상징한다. 이상 급등 구간과 연관 계정을 자동 적출하는 시스템은 거래소 자체 모니터링을 넘어 당국 차원의 ‘이중 안전망’을 구축하는 효과를 낸다. 이는 향후 불공정 거래에 대한 입증 부담을 낮추고, 제재의 신속성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입법 측면에서도 2단계 규율의 윤곽이 구체화되고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준비반을 통해 발행·공시·인가 체계를 정비하겠다는 계획은 가상자산을 자본시장에 준하는 규율 대상으로 편입하겠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거래소 수수료 공시 세분화 역시 이용자 보호와 경쟁 촉진을 동시에 노린 조치다. 민생금융범죄 대응 강화는 현 정부의 기조와 맞닿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잔인한 금융' 척결 기조에 맞춰, 금감원은 불법사금융과 보이스피싱을 최우선 현안으로 설정했다. AI 기반 조기 차단 시스템과 피해금 배상책임제도 준비는 단순 단속을 넘어 구조적 예방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IT 리스크에 대한 접근은 한층 강경해졌다. 징벌적 과징금 도입과 CEO·CISO 책임 강화는 전산 사고를 ‘불가항력’으로 보던 관행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이다. 금융사가 스스로 IT 자산을 관리하고 취약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현장 점검과 검사로 이어진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달 가동되는 통합관제시스템(FIRST)은 금융권 사이버 위협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허브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에 금융 AI 윤리지침과 위험관리 프레임워크 마련은 기술 활용 확대에 따른 새로운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포석이다.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의 선불충전금 보호 강화 역시 이용자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종합하면, 금융위의 이번 업무계획은 가상자산·IT·민생금융 범죄를 하나의 감독 축으로 묶어 관리하겠다는 전략적 전환이다. 금융당국의 규율 범위가 기술과 플랫폼 영역까지 본격 확장되는 만큼, 시장과 업계의 대응 역시 한층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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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가상자산 시세조종 '고래·가두리·경주마' 정조준⋯IT 사고엔 징벌적 과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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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레이더] 코스피, 미국발 투매에 5천100선 붕괴
- 미국 뉴욕증시 급락 여파로 6일 국내 증시가 큰5,100선 아래로 밀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장 대비 74.43포인트(1.44%) 내린 5,089.14에 거래를 마치며 5,100선을 내줬다. 장중 한때 4,900선까지 밀리며 변동성이 확대됐다. 코스닥 지수도 27.64포인트(2.49%) 하락한 1,080.77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커지며 0.5원 오른 1,469.5원으로 집계됐다. 미국발 투자심리 위축 속에 반도체와 2차전지, 방산주를 중심으로 매도세가 확산됐다. 삼성전자는 0.44% 하락한 158,600원, SK하이닉스는 0.36% 내린 839,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반면 역대급 실적을 발표한 KB금융(7.03%)과 신한지주(2.97%)는 강세를 보였다. [미니해설] 미국발 'AI 한파'가 흔든 한국 증시…조정인가 추세 전환의 신호인가 6일 국내 증시는 미국 뉴욕증시 급락의 충격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전날 뉴욕증시에서는 기술주와 우량주를 가리지 않는 투매가 나타났고, 이는 서울 증시 개장과 동시에 매도 압력으로 이어졌다. 코스피는 장 초반 3% 가까이 급락하며 4,900선을 위협했고, 코스닥 역시 낙폭을 키웠다. 프로그램 매도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장 초반 코스피 선물 시장에서는 사이드카가 발동되는 등 시장은 극도의 불안 국면에 놓였다. 이번 하락의 직접적인 배경은 미국 증시를 덮친 'AI 수익성 우려'다. 그간 뉴욕증시는 인공지능 설비 투자 확대와 빅테크 기업들의 공격적인 자본지출 전망을 근거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AI 투자 대비 수익 창출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차익 실현 매물이 급증했다. 여기에 고용 지표 둔화 조짐까지 더해지며 경기 둔화 가능성이 재부각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국내 증시에서도 반도체 대형주를 정면으로 압박했다. AI 수요 확대의 최대 수혜주로 꼽혀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상대적으로 낙폭이 크지 않았지만, 투자심리 위축을 피하지는 못했다. 2차전지와 바이오, 방산 등 그동안 주가 상승을 주도했던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도 일제히 약세를 나타냈다. LG에너지솔루션(-2.53%), 삼성SDI(-4.02%), 삼성바이오로직스(-1.88%), 한화에어로스페이스(-3.75%),한화오션(-3.69%), 현대차(-4.30%), 기아(-2.75%) 등이 동반 하락하며 시장 전반의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반면 금융주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KB금융과 신한지주는 호실적 발표와 주주환원 기대가 부각되며 상승 마감했다. 이는 실적 가시성이 높은 종목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전형적인 ‘위험 회피 장세’의 단면으로 해석된다. 증시가 조정 국면에 들어설수록 성장 기대보다는 실제 실적이 확인된 업종으로 수급이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도 위험 회피 심리는 분명히 드러났다.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70원을 넘어서며 상승 압력을 받았다.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에 더해 달러 강세, 엔화 약세 흐름이 겹치며 환율을 끌어올렸다. 환율 상승은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를 키우는 요인으로, 주식시장에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정을 단기적인 숨 고르기로 볼지, 아니면 중기적인 추세 전환의 신호로 볼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AI 관련 투자 확대 기조 자체가 꺾인 것은 아니라며 과도한 비관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뉴욕증시의 고평가 논란과 글로벌 유동성 환경 변화를 감안하면 변동성 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관건은 미국 증시의 방향성과 환율 흐름이다. AI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미국 경기 둔화 우려가 완화될 경우 국내 증시도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지수보다는 실적과 재무 구조가 탄탄한 종목 중심의 선별적 접근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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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레이더] 코스피, 미국발 투매에 5천100선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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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1)] "사람인가 로봇인가"⋯36.5도 체온에 눈웃음 짓는 中 '모야'의 등장이 섬뜩한 이유
- 중국 상하이의 한 무대. 165cm의 '여성'이 관객을 향해 걸어 나온다.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눈을 맞추고, 입가에는 묘한 미소를 띠고 있다. 관객들은 환호성 대신 잠시 숨을 죽였다. 너무나 인간 같지만,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로봇 스타트업 '드로이드업(DroidUp)'이 공개한 인간형 로봇 '모야(Moya)'가 글로벌 로봇 업계에 충격을 던졌다. 이 로봇은 공장에서 나사를 조이는 투박한 기계가 아니다. 체온을 가지고, 눈을 맞추며, 미세한 표정으로 감정을 흉내 낸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무너질 때 느껴지는 기이한 감정,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건너뛰겠다는 중국의 야심 찬 선전포고다. 뇌만 있던 AI, '육체'를 입다…'체화 지능'의 진화 드로이드업은 모야를 '세계 최초의 완전 생체모방형(Biomimetic) 체화 지능 로봇'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주목할 키워드는 '체화 지능(Embodied AI)'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접한 챗GPT 같은 AI가 '서버라는 유리병 속에 갇힌 뇌'였다면, 체화 지능은 그 뇌에 팔다리와 감각 기관을 달아준 것이다. 모야는 디지털 공간이 아닌 물리적 세계에서 보고, 듣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영상 속 모야는 단순한 입력 반응을 넘어선다. 상대방의 눈과 눈 맞춤을 하며(Eye contact) 고개를 끄덕이고, 상황에 따라 눈꼬리를 내리거나 입꼬리를 올리는 '미세 표정(Micro-expressions)'을 구사한다. 이는 로봇 공학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기술 중 하나다. 찡그림, 놀람, 미소 같은 인간의 비언어적 소통을 모사해 '기계'가 아닌 '동반자'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설계된 것이다. 36.5도의 온기, 그리고 92%의 보행 정확도 모야의 스펙은 철저히 '인간 친화적'이다. 키 165cm에 무게는 32kg. 성인 여성의 키와 비슷하지만 무게는 훨씬 가볍다. 가장 놀라운 점은 '체온'이다. 모야는 섭씨 32~36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왜 로봇에게 체온이 필요할까. 이는 모야의 주 무대가 차가운 공장이 아니라, 병원이나 가정, 요양원임을 시사한다. 사람이 로봇의 손을 잡거나 부축을 받을 때, 차가운 금속성의 감촉 대신 따뜻한 생명체의 온기를 느끼게 하려는 의도다. 보행 능력 또한 수준급이다. 회사 측은 모야의 '보행 자세 정확도'가 92%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단순히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넘어, 골반과 무릎, 발목의 움직임이 실제 인간의 보행 메커니즘과 92% 흡사하다는 의미다. 부자연스러운 '로봇 걸음'을 지우고, 인간 무리에 섞여 있어도 위화감이 없는 이동 능력을 확보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껍데기'만 바꾼다…모듈형 설계의 비밀 기술적 세부 사항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외신과 전문 매체들은 모야의 하드웨어 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로봇 전문 매체 '로보호라이즌(RoboHorizon)'은 모야가 '워커 3(Walker 3)'라는 섀시(뼈대)를 기반으로 제작됐다고 보도했다. '워커'는 중국의 대표적인 휴머노이드 기업 유비테크(UBTECH)의 간판 모델명이라 기술 제휴 의혹이 일었으나, 양사 모두 공식적인 연관성은 부인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뼈대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 위에 적용된 '모듈형 설계'다. 모야는 내부의 기계적 구조(골격)는 유지한 채, 외부의 스킨(피부)을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비유하자면 '마네킹'과 같다. 마네킹의 몸통은 그대로 둔 채, 필요에 따라 의료진의 얼굴, 가정교사의 얼굴, 혹은 특정 캐릭터의 외형으로 '갈아입히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로봇 생산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다양한 서비스 현장에 맞춤형으로 투입할 수 있는 양산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서양은 '기계답게', 중국은 '사람답게' 모야의 등장은 글로벌 휴머노이드 개발의 두 갈래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테슬라의 '옵티머스'나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들이 인간의 형태를 하되 얼굴은 매끈한 디스플레이나 기계 장치로 마감해 "나는 로봇입니다"라고 선언하는 반면, 중국 기업들은 인간을 극한까지 모방하는 길을 택했다. 이 같은 '극사실주의'는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도 논쟁을 불렀다. "너무 리얼해서 감탄스럽다"는 반응과 "영혼 없는 눈동자가 움직이는 게 섬뜩하다"는 불쾌한 골짜기 반응이 엇갈린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모야는 산업용도, 캐릭터형도 아닌 그 중간의 불안한 지점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드로이드업은 이 불쾌함을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로 보고 있다. 익숙해짐의 단계를 넘어서면, 인간은 자신과 닮은 존재에게 더 큰 신뢰를 보낸다는 계산이다. 1100만 원의 충격…'1가구 1로봇' 시대 여나 가장 파괴적인 것은 가격이다. SCMP 등 외신에 따르면 모야의 예상 시작가는 약 120만 엔(약 1100만 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현재 산업용 협동 로봇 하나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는 '가격 혁명'에 가깝다. 저렴한 가격과 인간 닮은 외형, 따뜻한 체온. 이 세 가지 조합은 모야가 노리는 시장이 명확함을 보여준다. 바로 고령화 사회의 돌봄(Care), 교육, 그리고 서비스업이다. 모야는 2026년 말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야의 등장이 우리에게 묵직한 사회적 질문을 던진다고 지적한다. 인간과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따뜻한 체온을 가진 존재가 우리 집 거실로 들어올 때, 우리는 그들을 가전제품으로 대할 것인가, 아니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휴머노이드 로봇의 보행 정확도 92%라는 숫자는 기술의 지표지만, 나머지 8%의 간극이 채워지는 날, 인류는 '인간성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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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커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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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1)] "사람인가 로봇인가"⋯36.5도 체온에 눈웃음 짓는 中 '모야'의 등장이 섬뜩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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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미 월가 'AI 랠리' 숨 고르기⋯AMD 쇼크에 나스닥 1.5% 급락
- 미국 뉴욕증시가 4일(현지시간) 인공지능(AI) 기대를 타고 달려온 반도체·소프트웨어주에 대한 차익 실현과 재평가가 겹치며 혼조세를 보였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전장 대비 0.5% 하락하며 이틀 연속 내렸고, 나스닥 종합지수는 1.5% 급락했다. 반면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48포인트(0.3%) 오르며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이날 장의 방향을 가른 것은 반도체였다.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MD)는 1분기 실적 전망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확산되며 17% 폭락했다. 이는 2017년 이후 최대 낙폭이다. 브로드컴은 6%,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12% 떨어지는 등 칩주 전반이 압박을 받았다. 암호화폐도 위험회피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7만3000달러 아래로 내려가며 3% 넘게 하락했다. 소프트웨어주 약세도 이어졌다. 오라클이 6%, 크라우드스트라이크가 2% 넘게 밀렸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1% 상승하며 방어력을 보였다. 다우지수 구성 종목 가운데서는 암젠이 호실적에 7% 급등했고, 허니웰도 1% 넘게 올랐다. 기술주에서 가치주·경기민감주로의 순환매가 뚜렷해진 하루였다. [미니해설] AI 기대의 재조정…"승자와 패자 가르는 장" 이번 장세는 '하락'보다 '선별'이라는 단어가 더 정확하다. 나스닥이 1.5% 밀렸지만 다우가 상승한 것은, 시장이 성장주 전체를 버린 것이 아니라 AI 서사 속에서 과도하게 앞서간 구간을 정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 AMD가 있다. 실적이 나빴다기보다 기대가 너무 높았다. AI 가속에 대한 서사가 이미 주가에 충분히 반영된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이제 매출의 질과 타이밍, 그리고 경쟁 구도를 더 냉정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AMD의 급락은 반도체 업종 전반으로 번졌다. AI 인프라 수혜가 확실하다는 인식 속에 밸류에이션이 크게 올라온 칩주들은, 실적 가이던스가 한 박자만 늦어져도 가차 없는 조정을 맞았다. 브로드컴과 마이크론의 동반 하락은 "AI 투자가 계속되더라도 속도와 수익 배분은 균등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졌다. 반도체는 여전히 구조적 성장 산업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실적 가시성과 공급·수요 균형에 따라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AI가 만든 질문, 소프트웨어의 숙제 소프트웨어 섹터가 연속 하락한 배경도 비슷하다. 오라클과 크라우드스트라이크를 비롯한 기업들은 구독 기반의 안정적 매출 모델을 강점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업무 자동화와 비용 절감을 앞세우며 기존 소프트웨어의 가격 결정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최근 앤스로픽 등 AI 기업의 기술 진전이 전해질수록, 투자자들은 "AI가 소프트웨어를 보완할 것인가, 대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 든다. 이는 당장의 실적 악화보다 중장기 수익 구조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며 주가를 압박한다. 그럼에도 모든 기술주가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상승 마감한 것은, AI를 단일 제품이 아니라 플랫폼과 생태계로 흡수한 기업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시장은 이제 'AI 노출도'가 아니라 'AI를 통한 현금흐름 창출 능력'을 기준으로 기업을 나누고 있다. 다우의 반격, 순환매의 본질 다우지수가 오른 장면은 이번 조정의 성격을 분명히 한다. 암젠의 급등, 허니웰의 상승은 투자자들이 기술주에서 빠져나온 자금을 실적 가시성이 높은 대형 가치주로 옮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전형적인 위험회피 국면이라기보다, 장기간 성장주 중심으로 왜곡됐던 포트폴리오를 정상화하는 과정에 가깝다. 실제로 다수의 산업·금융 종목이 52주 신고가를 기록하며 시장 참여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연초 이후 플러스로 돌아선 것도 상징적이다. 워런 버핏에서 그레그 에이블로 이어진 CEO 교체 첫해에 버크셔가 시장 변동성 속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현금흐름과 자본 배분의 중요성을 다시 환기시킨다. 고평가 논란에서 자유로운 기업들이 상대적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고용지표와 정책 변수 이날 발표된 ADP 민간 고용 증가가 2만2000명에 그친 것도 투자 심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노동시장이 빠르게 식고 있다는 신호는 금리 인하 기대를 자극할 수 있지만, 동시에 경기 둔화 우려를 키운다. 비농업 고용지표 발표가 정부 셧다운 여파로 연기된 상황에서, 시장은 단편적인 지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번 조정은 AI 테마의 붕괴가 아니라 재정렬이다. AI 투자 사이클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시장은 더 이상 '모두가 이긴다'는 서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인프라 사이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과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는 지수의 등락보다 자금의 이동 경로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주가 흔들릴수록, 시장의 중심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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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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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미 월가 'AI 랠리' 숨 고르기⋯AMD 쇼크에 나스닥 1.5% 급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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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워치(146)] "중국발 공포가 깨운 12년 전의 악몽"⋯금·은 시장 '검은 목요일'의 경고
- 안전자산의 대명사였던 금 시장이 유례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국제 금값이 하루 만에 9% 급락하며 12년 6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2024년부터 이어진 '황금 랠리'의 기세가 한순간에 꺾이면서, 시장에서는 2013년의 폭락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무적' 같던 금값, 9% 수직 낙하⋯2013년의 데자뷔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금 현물 종가는 트로이온스당 4,894.23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9.0% 폭락했다. 이는 2013년 4월 15일(-9.1%) 이후 가장 낮은 일일 변동률이다. 당시에도 금값은 10년 가까이 이어진 장기 우상향 끝에 중국의 경제지표 부진과 남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겹치며 폭락한 바 있다. 이번 폭락의 도화선은 역설적으로 그간 랠리를 주도했던 '중국발 투기 자금'이었다. 2024년(27%)과 2025년(64%)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던 금값은 올해 장중 5,595달러까지 치솟으며 광기 어린 속도를 보였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초강경 매파' 성향의 케빈 워시를 차기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으로 지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금리 인하 기대감에 베팅했던 중국 투자자들이 일제히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시장은 붕괴했다. 전 브리지워터 원자재 책임자 알렉산더 캠벨은 "중국이 팔기 시작했고, 전 세계는 이제 그 강력한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라고 진단했다. '디베이스먼트' 신뢰의 균열⋯은(銀) 시장은 '아수라장' 지난해 투자자들은 달러 가치 하락과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해 금과 은을 사들이는 '디베이스먼트(Debasement) 트레이드'에 몰두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과 연준의 독립성 훼손 우려는 달러 신뢰도를 8%나 떨어뜨리며 금값을 천정부지로 밀어 올렸다. 그러나 투기 자금이 쏠린 곳부터 균열은 더 크게 나타났다. 시장 규모가 금의 8분의 1 수준(약 980억 달러)에 불과한 은 시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지난달 30일 은 현물 가격은 하루 만에 27.7% 급락했다. 이날 최대 은 ETF인 '아이셰어즈 실버 트러스트'의 거래대금은 평소의 20배가 넘는 4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된 자산 중 하나로 기록됐다. 1980년 '은 파동'의 경고⋯거품 붕괴의 서막인가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서 1980년 '헌트 형제 사건'을 떠올리고 있다. 당시 텍사스 석유 재벌 헌트 일가의 매집으로 50달러까지 치솟았던 은값은 단 두 달 만에 10달러 선으로 폭락하며 시장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올해 초까지 17%의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이번 폭락이 단순한 조정이 아닐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3년 폭락 당시에도 금값은 그해 말까지 저점을 계속 낮추며 장기 침체기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과열된 투기 수요가 빠져나간 자리에 실물 경제의 펀더멘털이 버텨줄지가 향후 금·은 가격의 향방을 결정할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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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워치(146)] "중국발 공포가 깨운 12년 전의 악몽"⋯금·은 시장 '검은 목요일'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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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연준 리스크 걷히자 투기 거품 붕괴…은·기술주 급랭
- 미국 증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지명 소식에 한때 안도했지만, 귀금속 가격 폭락과 기술주 약세가 겹치며 하락 마감했다. 연준 독립성에 대한 우려는 완화됐지만, 과열됐던 자산 가격이 급격히 식으면서 시장 변동성은 오히려 확대됐다. 30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241.18포인트(0.50%) 하락한 4만8796.73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49.21포인트(0.71%) 내린 6919.80, 나스닥종합지수는 289.21포인트(1.22%) 떨어진 2만3395.91에 마감했다.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연준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지명했다는 소식에 초반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워시는 인플레이션에 비교적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인물로,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후보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달러화는 강세를 보였고, 미 국채 금리도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나타냈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곧 하락 전환했다. 은과 금 가격이 각각 하루 만에 약 30%, 11% 급락하면서 투기적 자금이 빠져나갔고, 이 여파로 소재주와 기술주가 동반 약세를 보였다. 은 가격 급락은 최근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형성됐던 레버리지 거래가 강제 청산 국면에 들어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술주 가운데 애플은 시장 기대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하락했다. 전날 마이크로소프트가 실적 발표 이후 10% 넘게 급락한 데 이어, 대형 기술주 전반에 대한 경계심이 이어졌다. 반면 통신주인 버라이즌은 실적 호조와 연간 전망 상향에 힘입어 11% 이상 급등했다. 다만 월간 기준으로는 주요 지수가 모두 상승세를 유지했다. 1월 들어 다우·S&P500·나스닥은 각각 1% 안팎 상승했고, 중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지수는 5% 이상 오르며 상대적 강세를 보였다. [미니해설] '안도 랠리'는 짧았고, 시장은 다시 냉정해졌다 이번 뉴욕증시는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와 금융시장 내부의 조정 압력이 동시에 작동한 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연준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지명하면서, 연준이 행정부의 금리 인하 압박에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됐다. 워시는 과거 연준 내부에서 물가 안정과 통화정책 신뢰를 중시해온 인물로, 금융시장에서는 ‘예측 가능한 인선’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달러화 강세와 국채 금리 안정은 이러한 인식을 반영한다. 시장은 워시가 단기적으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되, 중장기적으로는 연준의 제도적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 변수 하나가 정리되자, 투자자들은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이동했다. “그렇다면 지금 자산 가격은 정당한가.” 은값 30% 폭락이 던진 경고…'투기 과열'의 끝은 늘 급격했다 이날 시장의 진짜 충격은 귀금속에서 나왔다. 은 가격은 하루 만에 약 30% 폭락하며 1980년 이후 최악의 낙폭을 기록했고, 금 역시 11% 급락했다. 불과 하루 전까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던 자산이 순식간에 급락한 것이다. 최근 1년간 은과 금 가격은 각각 200% 안팎, 80% 이상 급등했다. 지정학적 불안, 달러 가치 하락 우려,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겹치며 투기적 수요가 급증했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은 레버리지 ETF와 선물 거래를 통해 은 시장에 대거 유입됐다. 문제는 가격 상승 속도만큼이나 레버리지도 빠르게 쌓였다는 점이다.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되자 마진콜이 연쇄적으로 발생했고, 이는 다시 강제 매도로 이어졌다. 실물 수급이나 펀더멘털 변화보다 금융 포지션 정리가 가격을 끌어내린 전형적인 ‘디레버리징 장세’였다. 귀금속 시장에서 시작된 충격은 곧바로 주식시장으로 번지며 위험자산 전반에 대한 경계심을 키웠다. 기술주 '실적의 함정'…AI는 성장 동력인가, 비용 리스크인가 기술주 흐름 역시 시장의 고민을 보여준다. 애플은 아이폰 판매 급증과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하락했다. 이는 실적 자체보다 비용 구조와 향후 마진 압박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앞서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성장 둔화와 AI 인프라 투자 부담을 이유로 급락한 이후, 대형 기술주 전반에 ‘좋은 실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AI는 여전히 중장기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지만, 단기적으로는 막대한 설비 투자와 운영 비용 증가라는 그림자를 동반한다. 시장은 이제 AI라는 키워드보다 “이익으로 얼마나 연결되는가”를 묻고 있다. 밸류에이션이 이미 높은 상태에서 실적의 질과 현금흐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가는 오히려 실적 발표 이후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장세는 분명히 보여줬다. 방어주·중소형주로 이동하는 자금…2026년 장세의 단서 흥미로운 점은 같은 날에도 업종별 희비가 극명하게 갈렸다는 점이다. 버라이즌처럼 실적 가시성이 높고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종목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금리 인하 기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방어적 성격과 배당 매력이 재조명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소형주가 대형 기술주 대비 상대적 강세를 이어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러셀2000지수는 이날 하락했지만, 월간 기준으로는 5% 이상 상승하며 주요 지수를 웃돌았다. 대형 기술주 쏠림에 대한 피로감과 포트폴리오 분산 요구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정은 단순한 악재 반영이라기보다 시장이 다음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에 가깝다. 연준 인선이라는 정치 변수는 일단락됐고,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유동성에 기대 오른 자산들이 실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2026년 증시는 점차 그 답을 요구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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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연준 리스크 걷히자 투기 거품 붕괴…은·기술주 급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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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마이크로소프트 급락에 기술주 흔들⋯뉴욕증시, AI 낙관론에 첫 제동
- 미국 뉴욕증시가 대형 기술주의 급락에 휘청였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실적 발표 이후 12% 급락하며 기술주 전반에 충격을 주자, 인공지능(AI) 랠리를 이끌어온 나스닥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이 동반 약세를 보였다. 29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S&P500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5% 내린 6940.02에 마감했다. 나스닥종합지수는 1.3% 급락했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24포인트(0.1%) 하락에 그쳤다. 비트코인은 6% 급락하며 약 두 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밀렸다. 이날 증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실적 발표가 결정타가 됐다. MS는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는데, 클라우드 사업 성장 둔화와 함께 다음 분기 영업이익률 전망을 낮춘 점이 투자심리를 급격히 위축시켰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 MS의 급락은 S&P500과 나스닥 지수 전반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소프트웨어 업종 전반도 흔들렸다. 서비스나우, 오라클, 세일즈포스 등이 일제히 급락하며 기술주 조정 폭을 키웠다. 소프트웨어 업종을 추종하는 ETF는 고점 대비 22% 하락해 약세장 국면에 진입했다. 시장에서는 AI 투자가 성장 동력인 동시에 수익성과 밸류에이션 부담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메타는 실적 호조에 힘입어 10% 급등하며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다. 캐터필러도 시장 기대를 웃도는 실적을 내놓으며 3% 상승했다. 한편 미 상원에서 정부 예산안이 진전을 보지 못하며 연방정부 셧다운 가능성이 다시 부각된 점도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니해설] 'AI는 성장 엔진인가, 비용 폭탄인가'…기술주가 던진 불편한 질문 이번 뉴욕증시 조정의 출발점은 단순한 실적 미스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실적은 수치만 놓고 보면 ‘참패’라 부르기 어렵다. 문제는 시장이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전제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클라우드 성장 둔화와 AI 인프라 투자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AI가 더 이상 단기 실적을 끌어올리는 만능 카드가 아니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I 경쟁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12% 급락이라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AI 투자가 가져올 ‘수익의 시점’이 예상보다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AI 데이터센터와 GPU 확보 경쟁은 비용 구조를 빠르게 악화시키고 있으며, 이 비용이 얼마나 빠르게 매출과 이익으로 전환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시장은 이제 "AI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넘어 "AI가 언제, 얼마나 돈이 되느냐"를 묻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급락은 이 질문에 대한 시장의 조급함이 집약된 사건이었다. 소프트웨어의 약세, 기술주 내부에서 갈라진 운명 이번 장세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기술주 내부의 균열이다. 반도체와 일부 하드웨어 종목은 여전히 AI 수혜 기대를 받는 반면,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정반대의 평가를 받고 있다. 서비스나우, 세일즈포스, SAP 등 주요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동반 급락은 단기 실적보다 구조적 성장성에 대한 의문이 커졌음을 보여준다. AI는 소프트웨어 기업에 양날의 검이다. 기업 고객 입장에서는 AI를 활용해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기존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와 구독 모델의 가격 정당성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크다. 생성형 AI가 코딩, 데이터 분석, 업무 자동화 영역까지 빠르게 침투하면서 "비싼 소프트웨어를 계속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기업 고객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종 ETF가 고점 대비 20% 넘게 밀리며 약세장에 진입한 것은 상징적이다. 이는 기술주 전체의 붕괴라기보다, AI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시장의 냉정한 재평가로 해석할 수 있다. 기술주 내부에서도 'AI 수혜주'와 'AI 피해주'가 분명히 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연준·정치 리스크까지 겹친 '속도 조절 국면' 여기에 거시 변수들이 겹치며 조정의 깊이를 키웠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금리 인하에 서두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재확인했다. 이는 고평가 논란이 있는 기술주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질수록, 미래 이익에 대한 할인율은 높아지고 성장주의 밸류에이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불확실성도 투자심리를 흔들었다. 미 상원의 예산안 처리 난항으로 연방정부 셧다운 가능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화됐다. 실제로 금 가격은 장중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뒤 급격한 변동성을 보였고, 비트코인 등 위험자산은 큰 폭으로 밀렸다. 이는 시장이 여전히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번 조정을 강세장의 종말로 해석하기에는 이르다. 기업 실적 시즌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시장은 AI라는 거대한 테마를 포기하기보다 '속도 조절'과 '선별 투자'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메타가 실적과 가이던스로 시장 기대를 충족시키며 급등한 사례는, AI 투자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향후 관건은 남은 빅테크 기업들이 AI 투자와 수익성 간의 균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느냐다. 애플을 비롯한 대형 기술주 실적은 이번 조정이 단기 충격에 그칠지, 아니면 기술주 전반의 구조적 재평가로 이어질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AI는 여전히 시장의 핵심 동력이지만, 이제 그 힘은 '꿈'이 아니라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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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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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마이크로소프트 급락에 기술주 흔들⋯뉴욕증시, AI 낙관론에 첫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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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0)] 내 안의 '타임 키퍼(Time Keeper)'가 나를 정의한다⋯자아의 경계는 뇌파의 속도
- '나(I)'는 어디서 끝나고 '세계(World)'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손을 뻗어 컵을 잡을 때, 우리는 그 손이 '내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피부라는 물리적 장벽이 나와 세계를 가르는 절대적 기준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신 뇌과학은 이 견고한 믿음에 균열을 낸다. 우리가 느끼는 자아의 경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뇌 속에서 1초에 수십 번 진동하는 '전기 신호의 리듬'이 만들어낸 아슬아슬한 합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와 프랑스 연구진이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연구는 인간의 자아 감각이 뇌의 특정 주파수, 즉 '알파파(Alpha waves)'의 속도에 종속되어 있음을 최초로 규명했다. ◇ 뇌가 속는 순간, 자아의 빗장이 풀린다 연구진은 106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뇌과학의 고전적 실험인 '고무 손 착각(Rubber Hand Illusion)'을 현대적으로 재설계했다. 실험 참가자는 자신의 실제 손을 가림막 뒤에 숨기고, 눈앞에 놓인 고무 손을 바라본다. 연구진은 로봇 팔을 이용해 참가자의 실제 손가락과 고무 손의 손가락을 붓으로 동시에 건드린다. 시각(고무 손을 건드리는 장면)과 촉각(실제 손의 느낌)이 정확히 일치하는 순간, 뇌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곧 타협한다. "아, 저 고무 손이 내 손이구나." 이때 뇌는 시각 정보와 촉각 정보를 하나로 통합(Integration)해 '나의 것'이라는 도장을 찍는다. 그런데 연구진은 여기서 '시간차'라는 변수를 던졌다. 로봇 팔이 붓질하는 타이밍을 미세하게 어긋나게 한 것이다. ◇ 알파파, 자아를 지키는 '보안 검색대' 여기서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됐다. 어떤 사람은 0.1초의 미세한 오차만 있어도 "이건 내 손이 아니다"라며 환각을 거부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자극이 0.5초 가까이 늦게 도착해도 고무 손을 자신의 손이라고 굳게 믿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까. 연구진이 뇌파(EEG)를 분석한 결과, 답은 두정엽(Parietal cortex)의 '알파파 주파수'에 있었다. 두정엽은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 정보를 통합해 '신체 지도'를 그리는 뇌의 관제탑이다.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공항 보안 검색대'를 떠올려보자. 알파파가 빠른 사람은 보안 검색대의 스캐너가 아주 빠르게 돌아가는 것과 같다. 시각 정보와 촉각 정보가 들어오는 시간차가 아주 조금만 벌어져도 "불일치! 이것은 외부 물체임"이라고 판정해 낸다. 자아의 경계가 엄격하고 촘촘한 것이다. 반대로 알파파가 느린 사람은 스캐너가 느긋하게 돌아가는 셈이다. 시각과 촉각 정보 사이에 틈이 벌어져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일치함. 이것은 내 몸임"이라며 통과시킨다. 자아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외부 사물인 고무 손까지 '나'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 "뇌파 조절했더니 '나'의 범위가 바뀌었다" 이번 연구가 학계의 주목을 받는 진짜 이유는 단순한 관찰(상관관계)을 넘어 인과관계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경두개 교류 전기 자극(tACS)' 기술을 이용해 참가자들의 두정엽에 미세한 전류를 흘려 알파파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외부 전류로 알파파를 빠르게 만들자, 평소라면 고무 손에 속아 넘어갔을 사람들조차 "내 손이 아니다"라며 자아의 경계를 좁혔다. 반대로 알파파를 느리게 만들자, 깐깐하던 사람들도 고무 손을 자신의 신체로 쉽게 받아들였다. 이는 '나'라는 감각이 영혼이나 정신의 영역이 아니라, 조절 가능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임을 시사한다.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헨릭 에르손 박사는 "뇌가 신체에서 오는 수많은 신호를 어떻게 하나로 묶어 '자아'라는 일관된 감각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설명했다. ◇ 조현병 치료부터 '메타버스 자아'까지 이 발견은 미래 의학과 기술 분야에 거대한 파장을 예고한다. 첫째, 정신 질환의 새로운 치료법이다. 조현병(Schizophrenia) 환자들은 종종 자신이 외부의 조종을 받고 있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신체를 타인처럼 느낀다. 이는 자아의 경계를 짓는 알파파 리듬이 깨졌기 때문일 수 있다. 뇌파를 튜닝(Tuning)해 무너진 자아의 벽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둘째, 환상지(Phantom Limb) 통증 해결이다. 팔다리가 절단된 환자가 없는 손발에서 통증을 느끼는 것은 뇌의 신체 지도가 업데이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뇌파 조절을 통해 뇌가 새로운 신체 경계를 받아들이게 도울 수 있다. 셋째, 가상현실(VR)과 로보틱스의 진화다. 메타버스 속 아바타나 로봇 의수(Prosthetics)를 착용할 때, 사용자의 뇌파를 일시적으로 느리게 조절한다면 어떨까. 차가운 기계 팔이나 가상의 몸을 거부감 없이 즉각적인 '내 몸'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몰입감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결국 '나'란 무엇인가. 이번 연구는 자아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뇌라는 하드웨어 위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적 합의'임을 보여준다. 10헤르츠(Hz) 안팎으로 진동하는 알파파의 리듬. 그 미세한 떨림 속에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의 경계선이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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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0)] 내 안의 '타임 키퍼(Time Keeper)'가 나를 정의한다⋯자아의 경계는 뇌파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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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 미국 사업부 매각 마침표⋯미·중 기술 패권 갈등 '일단락'
-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의 상징으로 꼽혀온 중국계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의 미국 사업부 매각이 최종 마무리됐다. 틱톡은 22일(현지시간) 미국 사업 부문을 분리한 유한책임회사(LLC)인 '틱톡 미국데이터보안(USDS) 합작벤처'가 설립됐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과 중국 정부는 틱톡 미국 사업부를 Oracle과 사모펀드 Silver Lake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에 매각하는 방안을 최종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 지배구조에서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ByteDance)의 지분은 19.9%로 축소된다. 오라클과 실버레이크, 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 인공지능(AI) 투자사 MGX가 각각 15%를 확보하며, 미국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7인 이사회가 신설 합작사를 운영한다. 이번 합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설정한 매각 시한을 하루 앞두고 이뤄졌다. [미니해설] 틱톡, 미국 사업부 매각 완료·합작회사 설립 틱톡 미국 사업부 매각은 단순한 기업 구조조정을 넘어,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한 국면을 정리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둘러싼 국가 안보 논쟁이 수년간 이어진 끝에, 정치·외교적 타협을 통해 출구를 찾았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미국이 틱톡을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 국가정보법을 근거로, 틱톡이 수집한 미국 사용자 데이터가 중국 정부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미 재무부 산하 CFIUS는 같은 해 틱톡과 바이트댄스의 안보 위험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이는 이후 강제 매각 논의의 출발점이 됐다. 정권 교체 이후에도 기조는 유지됐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24년 바이트댄스가 틱톡 미국 사업권을 매각하지 않을 경우 미국 시장에서 퇴출하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다만 집권 1기 당시 틱톡 금지를 추진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과정에서 틱톡을 적극 활용하며 입장을 선회했고, 취임 이후 매각 시한을 여러 차례 연장해 협상 시간을 벌어줬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지배구조 재편과 통제권 분산이다. 바이트댄스의 지분을 20% 미만으로 낮추고, 미국 자본과 인사가 경영 전면에 나서도록 설계함으로써 '중국 통제' 논란을 차단하는 구조가 마련됐다. 특히 신설 합작사가 미국 사용자 데이터 보호, 알고리즘 보안, 소프트웨어 검증, 안전 정책을 전담하도록 한 점은 미국 정부가 요구해 온 핵심 조건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매각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JD 밴스 부통령이 지난해 틱톡 미국 사업부 가치를 약 140억달러(약 20조원)로 평가했다고 밝힌 바 있어, 이번 거래 역시 그에 준하는 수준일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이는 단일 플랫폼 사업부 매각으로는 이례적인 규모다. 이번 매각으로 미국과 중국은 오는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장기간 이어져 온 민감한 현안을 하나 정리하게 됐다. 다만 기술 패권 경쟁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도체, 인공지능, 통신 장비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는 여전히 양국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틱톡 사례는 글로벌 플랫폼 규제의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한 국가가 자국 안보를 이유로 외국계 플랫폼의 소유 구조와 데이터 통제 방식까지 요구하고, 해당 국가가 이를 수용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다. 이는 향후 다른 국가들도 유사한 논리를 적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시장에서는 틱톡 매각이 미국 내 서비스 지속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글로벌 플랫폼의 '국적 문제'를 다시 한 번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플랫폼을 누가 소유하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는 이제 기업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평가다. 이번 매각은 틱톡의 문제를 넘어, 디지털 시대에 기술과 안보, 외교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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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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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 미국 사업부 매각 마침표⋯미·중 기술 패권 갈등 '일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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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다우, 트럼프 '관세 유턴'에 이틀 연속 반등
- 뉴욕증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럽 관세 방침 철회에 힘입어 이틀 연속 반등했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되면서 이번 주 초 시장을 강타했던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흐름도 진정되는 모습이다. 22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333포인트(0.7%) 상승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6%, 나스닥 종합지수는 0.9% 올랐다. 다우지수는 주 초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 고율 관세 경고로 기록했던 낙폭을 사실상 모두 만회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그린란드 문제와 관련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합의의 틀(framework)을 마련했다”며 2월 1일부터 시행 예정이던 유럽 8개국 대상 추가 관세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한 점도 투자심리 회복에 기여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대형 기술주가 반등을 주도했고, 전날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중소형주 지수 러셀2000도 강세 흐름을 이어갔다. 다만 주간 기준으로는 다우지수만 소폭 상승권에 진입했을 뿐, S&P500과 나스닥은 여전히 약보합권에 머물러 있다. 관세 유턴이 단기 안도 랠리를 이끌었지만, 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니해설] 관세 한마디에 흔들린 월가, 다시 확인된 '트럼프 변수' 이번 반등은 실적이나 지표가 아닌 정치 발언 하나로 촉발됐다는 점에서 월가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매입 문제를 둘러싸고 유럽에 고율 관세를 경고하자, 뉴욕증시는 급락했고 달러는 약세로 돌아섰으며 국채 금리는 급등했다. 시장은 이를 단순한 외교 수사가 아니라 실제 정책 리스크로 인식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자 분위기는 즉각 반전됐다. 관세 철회와 함께 “합의의 틀”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자, 투자자들은 지정학적 충돌이 전면화될 가능성을 낮게 보기 시작했다. 월가에서는 “백악관 발언이 협상용 레버리지라는 점을 시장이 다시 학습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셀 아메리카'는 끝났나, 잠시 멈췄을 뿐인가 이번 반등으로 ‘셀 아메리카’ 흐름이 완전히 종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식은 반등했지만, 금 가격은 여전히 사상 최고치 부근에서 움직이고 있고, 미 국채 금리도 이번 주 초 급등 이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단기 안도 속에서도 구조적 리스크를 여전히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덴마크 정부가 “주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 역시 그린란드 사안을 안보·통상 차원에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관세 갈등이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셈이다. 여기에 일본 장기 국채 금리 급등 이후 글로벌 채권시장이 동요한 점도 부담 요인이다. 자본 이동과 환율 변동성이 다시 확대될 경우, 미국 자산에 대한 회피 심리가 재차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기술주·중소형주 반등이 던지는 신호 이번 장세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시장 내부 체력이다. S&P500 구성 종목 가운데 52주 신고가를 기록한 종목 수는 여전히 적지 않았고, 저점으로 밀린 종목은 제한적이었다. 이는 지수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개별 기업의 펀더멘털은 비교적 견조하다는 의미다. 특히 러셀2000의 강세는 상징적이다. 중소형주는 매출 대부분이 미국 내에서 발생해 관세와 환율 변수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다. 시장이 대형 기술주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내수 기반 종목으로 분산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개인 투자자들의 대응도 주목된다. JP모건에 따르면 이번 주 급락 국면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수하며 하방을 지탱했다. 이는 2025년 내내 이어졌던 ‘딥을 사라’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불확실성 해소가 아닌 '내성의 강화' 이번 반등은 불확실성의 종결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시장의 내성이 강화됐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는 전제를 시장이 이미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월가의 시선은 이제 다시 기업 실적, 연준 독립성 논란, 글로벌 자본 흐름으로 이동하고 있다. 다만 그 모든 변수 위에 여전히 ‘트럼프 리스크’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반등은 추세 회복이라기보다 정책 발언에 따른 변동성 국면의 한 장면으로 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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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다우, 트럼프 '관세 유턴'에 이틀 연속 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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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트럼프 '그린란드 관세 폭주'에 월가 급랭
- 뉴욕증시가 20일(현지시간) 급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 편입을 압박하며 유럽 동맹국을 상대로 고율 관세 부과를 공개적으로 경고하자, 시장은 위험자산뿐 아니라 달러와 미 국채까지 동시에 내던지는 전형적인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873.55포인트(1.77%) 급락한 4만8485.78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45.66포인트(2.10%) 밀린 6794.35로 내려앉았고, 나스닥지수도 558.51포인트(2.38%) 하락한 2만2956.88에 거래를 마쳤다. S&P500과 나스닥은 연초 이후 기준으로도 하락 전환했다. 시장의 불안은 변동성 지수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VIX)는 장중 20.78까지 치솟으며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동시에 미 국채 가격이 급락하면서 10년물 국채금리는 4.29% 선까지 뛰었고, 달러화는 유로·엔·스위스프랑 등 주요 통화 대비 뚜렷한 약세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 트루스소셜을 통해 "그린란드의 완전한 인수가 이뤄질 때까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8개국을 상대로 2월 1일부터 10% 관세를 부과하고, 6월부터는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프랑스가 반대에 나설 경우 와인과 샴페인에 최대 200%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유럽 각국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보복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연합(EU)이 '반강압 수단(Anti-Coercion Instrument)' 발동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무역 갈등의 전선이 동맹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정이 단순한 외교 발언 충격을 넘어, 자본 흐름 자체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덴마크 연기금 아카데미커펜션은 이날 "미국의 재정과 부채 문제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미 국채 약 1억달러어치를 이달 말까지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안전자산으로 간주돼 온 미 국채에서조차 이탈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자금은 금과 은 등 전통적 실물 안전자산으로 몰렸다.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476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은 가격도 동반 급등했다. 지정학적 충돌과 정책 불확실성이 동시에 커질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위기형 자산 이동'이다. [미니해설] 관세의 '정치화'가 흔든 월가…이번 하락의 본질은 무엇인가 관세가 경제정책을 넘어 '지정학 무기'로 변했다 이번 급락의 핵심은 관세가 물가·경기를 조절하는 전통적 정책 수단이 아니라, 영토·안보 문제를 관철하기 위한 정치적 압박 도구로 인식됐다는 점이다. 시장은 이미 고평가 논란 속에서 '완벽한 실적'을 전제로 가격이 형성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가 동맹국을 겨냥한 강압 수단으로 비치자, 불확실성 프리미엄이 한꺼번에 재가격화됐다. 브래드 롱 웰스파이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관세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비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단기간에 무기화된 점은 시장에 새로운 충격"이라고 평가했다. '리스크 오프'가 아닌 '미국 회피' 신호 통상적인 위험회피 국면에서는 달러와 미 국채가 강세를 보인다. 그러나 이날 시장은 달랐다. 달러 약세, 미 국채 매도, 주식 급락이 동시에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리스크 오프'가 아니라 미국 자산 비중 자체를 줄이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설립자는 "무역 전쟁의 반대편에는 자본 전쟁이 있다"며 "미국 국채를 사려는 의지가 약해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 발언은 이날 시장 흐름을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다음 변수는 '말의 정책화' 속도 향후 관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실제 정책 일정과 법적 조치로 얼마나 빠르게 구체화되느냐다. 관세 대상국 확대, 관세율 인상, 특정 품목에 대한 초고율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유럽의 대응 수위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월가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기 조정에 그칠지, 아니면 2025년 봄 이후 잠잠했던 '트럼프 변동성'의 재개 신호가 될지를 가늠하고 있다. 고평가된 주식시장, 흔들리는 미 국채 수요, 연준 독립성 논란까지 겹친 상황에서 정책 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변동성은 구조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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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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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레이더] 트럼프 '그린란드 관세 폭주'에 월가 급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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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월가 레이더] 미 연준 흔드는 '대법원 변수'⋯PCE·넷플릭스·인텔, 다음 주 월가 3대 분수령
- 다음 주(1월 19~25일) 뉴욕증시는 '실적'과 '정책'이 동시에 변수가 되는 한 주가 될 전망이다. 로이터는 "지정학·정책 소음이 커진 만큼, 실적이 뉴스 사이클을 떠받쳐야 한다"고 전했다. 19일(월)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데이로 미국 금융시장이 휴장하며, 거래는 20일(화)부터 재개된다. 시장 관심은 대형 은행으로 시작된 4분기 어닝 시즌이 넷플릭스·존슨앤드존슨(J&J)·인텔 등으로 확산되는 대목에 쏠린다. 특히 로이터는 "이번 분기 눈높이가 높게 형성된 상황에서 '실적 상회+연간(2026년) 전망 상향'이 나오는 기업이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월가 진단을 소개했다. 최근 금융주는 양호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 금리 상한(10%·1년) 구상 등 정책 변수에 주가가 흔들린 바 있어, 이번 주엔 업종별로 '정책 민감도' 차별화가 더 뚜렷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거시지표도 굵직하다. WSJ에 따르면 22일(목)에는 연준이 중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11월)가 공개되고, 같은 날 3분기 국내총생산(GDP) 수정치도 발표된다. 주 후반에는 1월 제조업·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잠정치가 예정돼 있다. 국채 시장에선 20년물(22일)과 물가연동국채(TIPS·23일) 입찰이 대기 중이다. 정책·사법 리스크도 증시 변동성을 키울 요인이다.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인사 교체 시도와 관세 관련 쟁점이 대법원 판단 구간에 들어가며 '연준 독립성' 논란이 재점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주요국 정상·중앙은행 인사들의 발언도 시장의 해석 경쟁을 부를 전망이다. [미니해설] "실적이 버팀목, 정책이 발목"…1월 셋째 주 월가를 가를 3개의 신호 다음 주 뉴욕증시는 '방향성의 근거'를 다시 세우는 과정에 가깝다. 지수는 사상 최고치 부근을 오르내리지만, 최근 장세의 본질은 상승·하락보다 '가격 재평가'다. 실적이 강하면 주가는 버티고,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 금리·밸류에이션이 흔들린다. 로이터가 인용한 아트 호건(B. Riley Wealth)은 “소음이 많은 국면일수록 실적이 뉴스 사이클을 끌고 가야 한다”고 했는데, 이 한 문장이 다음 주 투자자들의 행동규칙이 될 가능성이 크다. 1) 어닝 시즌의 본게임 "가이던스가 주가를 가른다" 넷플릭스·J&J·인텔은 업종이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2026년 그림'을 시장에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로이터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들의 2026년 이익 증가율 컨센서스가 15%를 웃돈다고 전하며,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충족하고, 넘기고, 전망까지 올리는 기업이 보상받을 것"이라는 진단을 소개했다. 여기서 핵심은 숫자 그 자체보다 (1) 마진 방어, (2) 수요의 질, (3) 투자·비용 계획의 일관성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미디어 지형을 흔들 수 있는 경쟁(인수·합병 이슈 포함) 속에서 구독·광고·콘텐츠 비용의 균형을 어떻게 제시하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인텔은 AI·반도체 투자 사이클 속에서 '회복의 시간표'가 조금이라도 앞당겨지는 신호를 보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장은 "실적 서프라이즈"보다 "연간 가이던스의 설득력"에 더 큰 점수를 줄 가능성이 높다. 2) PCE·GDP·PMI: 금리 기대가 다시 정렬된다 WSJ은 22일(목) 발표되는 PCE 물가가 "연준의 선호 지표"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최근 고용지표 개선 흐름 이후 금리 인하 시점 판단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 같은 날 나오는 3분기 GDP 수정치는 ‘성장 탄성’이 과장됐는지, 혹은 여전히 강한지 확인하는 절차다. 주 후반 PMI는 제조·서비스의 체감 경기를 가늠하게 해 금리와 주가를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 요컨대 다음 주는 "인플레이션이 다시 문제인가, 아니면 연준이 조금 더 기다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이다. 만약 PCE가 끈적한 물가를 시사하면, 연준의 완화 기대는 뒤로 밀리고 장기금리는 위로 튈 수 있다. 반대로 물가가 예상보다 차분하면, 실적 장세의 '밸류에이션 부담'이 다소 완화되며 위험자산 선호가 살아날 여지가 생긴다. 3) 대법원·다보스·정책 소음: "연준 독립성 프리미엄"이 붙는다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쟁점과 연준 인사 관련 사안이 대법원 구간으로 들어가며 자산 가격 변동성을 자극할 수 있다고 전했다. 연준 독립성 논란은 단순 정치 뉴스가 아니다. 시장 입장에선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와 국채 위험 프리미엄에 직결되는 변수다. 여기에 다보스포럼까지 겹친다. 정상·중앙은행 인사 발언이 '정책 힌트'로 읽히는 순간, 금리와 달러, 주식의 상관관계가 급격히 바뀔 수 있다. 정책 소음이 커질수록 투자자들은 결국 "실적이라는 팩트"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그 실적의 해석(가이던스·거시환경·금리 경로)이 흔들리면, 지수는 쉽게 방향을 잡지 못하고 변동성만 커지는 장이 나타난다. 1월 19~25일 뉴욕증시는 '실적이 바닥을 받치고, 정책이 천장을 누르는' 구조가 될 공산이 크다. 시장이 원하는 건 분명하다. 좋은 실적과 덜 나쁜 정책. 둘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사상 최고치 부근의 주가는 생각보다 빠르게 재평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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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월가 레이더] 미 연준 흔드는 '대법원 변수'⋯PCE·넷플릭스·인텔, 다음 주 월가 3대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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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유동성 압박에 7개 점포 추가 영업 중단
- 홈플러스가 유동성 압박 심화를 배경으로 추가 점포에 대한 영업 중단에 나섰다. 홈플러스는 14일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경영진 공지를 통해 "한계 국면에 이른 재무 여건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문화점, 부산감만점, 울산남구점, 전주완산점, 화성동탄점, 천안점, 조치원점 등 7개 점포의 영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영업 중단 점포 소속 인력에 대해서는 인근 또는 타 점포로의 전환 배치 등을 통해 고용 안정을 유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홈플러스는 앞서 회생절차 개시 이후 자금 사정이 악화되자 현금 흐름 개선을 위해 지난해 8월 임대료 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15개 적자 점포의 폐점을 결정했으나, 거래 조건 완화 등을 전제로 해당 조치를 일시 유보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납품 지연과 중단 사태가 이어지며 자금 운용에 차질이 빚어졌고, 지난달 가양·장림·일산·원천·울산북구점을 비롯해 계산·시흥·안산고잔·천안신방·동촌점 등 다수 점포의 영업 중단을 잇달아 결정했다. 이에 대해 최철한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사무국장은 "회사는 회생계획 인가 여부와 무관하게 전례 없는 규모의 점포 영업 중단을 강행하고 있다"며 "사실상 홈플러스의 해체 수순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사무국장은 또 핵심 자산으로 분류되는 유성점, 동광주점, 원천점 등의 매각 관련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며 "이는 해당 점포들이 이미 디벨로퍼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며 "회사가 청산 시나리오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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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유동성 압박에 7개 점포 추가 영업 중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