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개를 앓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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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나비. 사진=픽사베이


제왕나비

- 아내에게


 

최동호


 

파도 위로 호랑무늬 날개를 펼치며

대지를 움켜쥔

나비가 날고 있다

생명의 빛을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이 장엄한 행렬은 생사를 건 운명적 비행


대양 너머 저 멀고 먼 산언덕에서

작은 들꽃 무리들이

피었다 또

지면서 비바람

헤치고 찾아올 나비를 기다리고 있을 때


사막의 하늘 높이 날아 지친 나비에게

태고의 영웅들이 남긴

장엄한 메아리는

산봉우리를 타고 가는 바람의 혼을 실어 주고


구름 뒤의 달은

나뭇잎에 매달려 쪽 잠자던

애벌레가 다시

고치에서 부활하여 날아오를 황금빛 영혼의

호랑무늬 날개를 지켜보고 있다

 

 

 

날개를 앓는 시간


계절이 바뀌는 틈새마다 까닭 없이 뼈마디가 저려오는 건, 아주 오래전 우리가 날개를 가졌던 짐승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도시의 빌딩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유독 매섭게 느껴지는 밤이면, 나는 습관처럼 등 뒤를 더듬어 본다. 퇴화해버린 날개 자리가 욱신거리는 것은, 저 먼 대양 너머에서 누군가 나를 간절히 부르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우리는 저마다 가슴 속에 보이지 않는 지도 한 장을 품고 산다. 그 지도는 편안하고 안락한 아스팔트 길이 아니라, 파도가 치고 모래바람이 부는 위태로운 경로를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길을 잃고, 매번 흔들리며, 때로는 주저앉아 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그저 하루를 버텨내기에 급급한, 작고 초라한 존재일 뿐인데 왜 내 안의 나침반은 자꾸만 아득한 곳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지만 생각해보면 기적 아닌 삶이 어디 있으랴. 연약한 날개 하나로 대륙을 횡단하는 저 미물들의 비행이 서러운 본능이라면, 무거운 생의 짐을 지고 ‘오늘’이라는 사막을 건너는 우리의 걸음은 숭고한 투쟁이다. 근육의 힘이 아니라 그리움의 힘으로, 우리는 기어이 나아간다.


지금 당신이 웅크리고 있는 그 캄캄한 침묵의 시간들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구름 뒤에 숨은 달이 묵묵히 밤을 지키듯, 그 어둠은 당신 안의 황금빛 날개를 몰래 벼리고 있는 시간일 테니. 꽃이 피고 지는 일이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수신호이듯, 당신의 고단함도 결국은 어딘가에 닿기 위한 가장 뜨거운 날갯짓임을 믿는다.


바람이 차다. 부디 이 바람을 타고,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로 무사히 건너가기를.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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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의 시의 정원>을 연재하는 김조민 시인. 사진=프로필

 

프로필

2013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미래서정문학상, 조지훈문학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한국예술위원회 문학창작산실 지원금 수혜. 웹진 시인광장 디카시 주간, 유튜브 (시읽는고양이) 크리에이터.


주요 작품

시집 『힘없는 질투』, 디카시집 『편복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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