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압 환경에서 영하 122도 초전도 현상 구현하며 수은 화합물 한계 극복
  • 인공지능과 양자물질 설계 결합한 전략적 탐색으로 초전도체 상용화 앞당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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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휴스턴대학과 오스트리아 그라츠공대 등에서 과학자들이 기존 초전도체 연구의 상식을 뒤집는 독창적인 실험으로, 1993년 이후 무려 30년 넘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대기압 환경 초전도 최고 온도 기록을 수립했다. 사진은 오스트리아 그라츠공대에 상온 초전도체를 연구하고 있는 TU Graz 이론 및 계산 물리학 연구소의 크리스토프 하일 교수. 사진 출처=Lunghammer / TU Graz

 

전기를 보낼 때 저항이 완전히 사라지는 마법 같은 물질, 초전도체(Superconductor). 만약 이 물질이 우리가 숨 쉬고 생활하는 일상적인 온도와 압력에서 작동한다면 인류의 기술 문명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의 도약을 맞이하게 된다. 송전탑을 거치며 허공으로 사라지는 막대한 전력 손실을 없애고, 병원의 거대한 MRI 장비를 노트북 크기로 줄이며, 마찰 없이 달리는 자기부상 열차를 일상으로 만들 수 있다.


지난 백 년 동안 수많은 과학자가 이 궁극의 물질을 찾아 헤맸지만 자연의 벽은 높았다. 초전도 현상은 영하 100도를 밑도는 극한의 추위나 지구 대기압의 수백만 배에 달하는 끔찍한 압력 속에서만 조심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최근 국제 과학계가 이 견고한 자연의 장벽에 매우 의미 있는 균열을 만들어냈다. 1993년 이후 무려 30년 넘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대기압 환경 초전도 최고 온도 기록이 마침내 깨진 것이다. 미국 과학 매체 사이언스뉴스와 피즈오알지(phys.org)는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이 경이로운 연구 결과를 지난 9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다이아몬드 압박 후 급속 냉각으로 구조 굳히는 마법


미국 휴스턴대 폴 추 교수 연구팀은 기존 초전도체 연구의 상식을 뒤집는 독창적인 실험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들이 선택한 물질은 1993년 대기압 상태에서 절대온도 133케이(영하 140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며 30년간 챔피언 자리를 지켜온 수은 기반 구리 산화물 화합물이다. 연구진은 이 오래된 화합물에 압력 퀜칭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물리적 훈련법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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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휴스턴대학교 UH 물리학자 덩량즈(왼쪽)와 폴 추는 초전도성 연구를 위해 미니 다이아몬드 앤빌 셀을 활용하고 있다. 사진=휴스턴대학교 홈페이지 캡처

 

실험의 원리는 몹시 까다롭지만 훌륭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두 개의 단단한 다이아몬드 사이에 화합물 시료를 끼워 넣고, 대기압의 10만 배에서 30만 배에 달하는 엄청난 압력으로 사정없이 짓눌렀다. 물질은 극단적인 압력을 받으면 내부 원자 구조가 빽빽하게 찌그러지면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는 특성을 지닌다.


진짜 마법은 그 다음 단계에서 일어난다. 연구진은 압력을 가한 상태에서 온도를 절대영도에 가까운 4케이(영하 269도)로 급격하게 얼려버린 뒤, 시료를 짓누르던 다이아몬드의 압력을 순식간에 풀어버렸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튼튼한 쇠 스프링을 떠올려 보자. 스프링을 손으로 꽉 누른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꽁꽁 얼려버리면, 손을 떼더라도 스프링은 원래의 느슨한 상태로 튕겨 나가지 못하고 찌그러진 모양 그대로 굳어버린다. 대장장이가 시뻘겋게 달궈진 쇠를 찬물에 담가 단단함을 고정하는 담금질과 똑같은 이치다. 온도가 너무 낮아 물질 내부의 원자들이 원래의 편안한 자리로 돌아갈 에너지를 얻지 못한 채, 초전도에 유리한 고압 구조 그대로 갇혀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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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력 급냉 실험에 사용되는 다목적 측정 장치는 1.2K(-457°F)의 온도에 도달할 수 있다. 사진=휴스턴대학교 홈페이지 캡처


그 성과는 눈부셨다. 압력이 완전히 사라진 평범한 대기압 상태에서도 이 화합물은 절대온도 151케이(영하 122도)까지 초전도 특성을 잃지 않았다. 30년 동안 누구도 넘지 못했던 기록을 무려 18도나 위로 끌어올린 쾌거다. 휴스턴대 폴 추 교수는 압력을 빼내는 속도가 조금만 빨라도 다이아몬드가 깨지거나 시료가 산산조각 나는 극도로 예민한 실험 과정을 회고하며 이 기술이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인지 설명한다. 

 

플로리다대 제임스 햄린 교수는 최근 초전도 분야를 휩쓸었던 여러 논란과 달리 이번 성과는 기존의 탄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매우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실험 결과라고 평가했다.


우연의 시대 종말 선언하고 인공지능이 빚어내는 양자 메타물질


기록을 깬 것 못지않게 중요한 변화는 초전도체를 대하는 과학계의 근본적인 접근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날 학술지에는 휴스턴대 연구를 포함해, 오스트리아 그라츠공대 등 세계 각국의 물리학자 16명이 공동으로 집필한 상온 초전도체 탐색 전략 논문이 함께 실렸다. 이들은 물리학의 어떤 법칙도 상온 초전도체의 존재를 가로막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최근 수소 화합물 연구에서는 대기압의 200만 배라는 극단적 환경이긴 하지만 절대온도 260케이(영하 13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다. 이제 과학자들의 목표는 이 고압 상태의 기적을 우리가 사는 일상적인 대기압 환경으로 온전히 끌어내리는 데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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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감도 자화 측정용 자화 특성 측정 시스템(MPMS). 사진=휴스턴대학교 홈페이지 캡처

 

과거의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수천 번, 수만 번 화합물을 섞고 끓이며 우연한 발견을 기다려야 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이제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라는 강력한 나침반이 생겼다. 그라츠공대 크리스토프 하일 교수는 최근 폭발적으로 향상된 계산 능력 덕분에 무한대에 가까운 화학 원소 조합을 가상 공간에서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후보 물질을 정확히 짚어주면, 과학자들은 그 설계도에 따라 실험실에서 물질을 빚어내기만 하면 된다.


나아가 연구자들은 초전도체를 단순한 화학 물질의 혼합물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양자 메타물질로 다루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자연이 만들어준 구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벗어나, 나노미터 단위로 구조를 다듬고 불순물을 정밀하게 주입하며 초단파 레이저를 쏘아 초전도 상태를 인간이 직접 증폭시키겠다는 뜻이다. 바야흐로 초전도체를 우연히 줍는 시대가 끝나고, 목적에 맞게 인위적으로 건축하는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물론 이번 휴스턴대의 기록도 영하 122도라는 매서운 추위 속에 머물러 있다. 온도를 200케이 근처로 조금만 올려도 초전도 성능이 서서히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나, 아직 공장이나 발전소에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상용화 단계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30년 동안 두꺼운 얼음에 갇혀 있던 초전도체 연구의 시계가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무기와 압력 퀜칭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나 다시 힘차게 돌기 시작했다. 

 

전 세계 물리학자들이 전략적으로 연대하며 상온 초전도체를 향한 지도를 그려 나가는 지금, 인류를 에너지의 족쇄에서 영원히 해방시킬 궁극의 물질을 손에 넣는 일은 이제 막연한 기적이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으로 좁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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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Eyes(126)] 휴스턴대, 30년 묵은 초전도체 기록 경신⋯상온 향한 압력 퀜칭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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