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광·산업 수요에 中 '탈달러' 금 매집⋯'화폐가치 하락'에 베팅
  • 런던선 은(銀) 재고 소진 '패닉', 월가선 금(金) 5000弗 전망 '투항'
골드바와 실버바 로이터 연합뉴스.jpg
최근 국제 금값은 천종부지로 오르고 있고, 세계 은 시장의 중심인 런던은 유동성 고갈로 사실상 마비되는 극던적인 현사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2025년 10월 13일 독일 뮌헨 소재 프로 아우룸 금고의 안전 금고실에 금괴와 은괴가 쌓여 있는 모습이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세계 경제의 지각판이 흔들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산업의 혈맥인 은(銀)이 자취를 감춰 물리적 공급망이 붕괴 직전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의 상징인 금(金)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월스트리트의 항복을 받아내고 있다. 실물 시장의 비명과 금융 시장의 환호. 이 극단적인 두 현상은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1971년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 5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미국 달러 시스템에 균열이 생겼음을 알리는 강력한 경고 신호다.


두 개의 시장, 하나의 경고음


패닉은 동시에, 그러나 다른 양상으로 터져 나왔다. 인도에서는 디왈리 축제를 기점으로 은 사재기 열풍이 불며 재고가 소진됐고, 세계 은 시장의 중심인 런던은 유동성 고갈로 사실상 마비됐다. 태양광 등 산업 수요가 폭증한 상황에서 벌어진 '실물 대란'이다.


반면 금 시장에서는 월가마저 소외될 정도의 강력한 '금융 랠리'가 펼쳐졌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CEO가 "준(準)이성적"이라 표현할 만큼, 전통적 가치 평가를 무시한 가격 폭등이 이어졌다. 이 랠리의 주역은 중앙은행과, 달러 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왜 지금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시계를 1971년으로 되돌려야 한다.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달러의 금태환 정지를 선언한 '닉슨 쇼크'는 세계 통화 시스템의 근간을 바꿨다. 금이라는 실물에 묶여 있던 화폐가 각국 중앙은행의 '신용'에만 의존하는 명목화폐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지난 50년간 이 시스템은 막대한 유동성 공급을 통해 세계 경제를 성장시켰지만, 동시에 끝없는 부채 증가와 자산 거품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리고 지금, 전례 없는 인플레이션과 지정학적 불안 속에서 투자자들은 마침내 중앙은행의 '신용'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금과 은의 귀환은 바로 이 역사적 변곡점에서 시작된 필연적 귀결이다.


실물의 비명(銀) vs 금융의 환호(金)


두 귀금속의 위기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 은의 패닉은 '산업 경제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태양광 패널, 전기차, 5G 통신 등 미래 산업에 필수적인 은의 공급망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MMTC-팜프 인디아의 비핀 라이나 책임자는 "27년 경력에서 이런 광적인 시장은 처음"이라며 실물 품귀 현상의 심각성을 증언했다. 특정 산업의 생산 차질을 넘어 실물 경제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이다.


반면, 금의 랠리는 '금융 시스템의 신뢰 붕괴'를 상징한다. 금은 더 이상 단순한 안전자산이 아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따르면, 전문 펀드매니저의 39%가 금을 보유하지 않아 이번 상승장에서 완전히 소외될 정도로 랠리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중국, 러시아 등)의 전략적 비축 자산이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불신하는 개인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된 것이다. 금값 폭등은 금융 시스템 자체가 리셋될 수 있다는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한다.


中 '탈달러' 야망, 지정학 판을 흔들다


이번 사태의 기저에는 '탈달러(De-dollarization)'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중국 인민은행이 11개월 연속 금 보유고를 늘린 것은 단순한 투자를 넘어선다. 미국이 달러를 무기화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자, 위안화 중심의 새로운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장기 포석이다. 희토류를 통제해 본 경험이 있는 중국은, 이제 금을 통해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의 발언권을 확보하려 한다. 금과 은의 가격 폭등은 달러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가 끝나고, 다극화된 새로운 세계 질서가 시작되는 '빅 리셋'의 서막일 수 있다.


은 공급망은 단기적으로 일부 정상화될 수 있겠지만, 구조적인 공급 부족은 계속 가격의 하단을 지지할 것이다. 금은 월가의 예측을 비웃으며 새로운 가격대를 향해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BofA는 투자 수요가 단 14%만 증가해도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으며, 골드만삭스는 민간이 보유한 미국 국채의 1%만 금으로 유입돼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측했다. 

 

중요한 것은 가격 자체가 아니라, 이 두 현상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우리는 지금 자산의 가치가 재정의되는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금과 은의 반란은 투자자들에게 "당신이 믿는 돈의 가치는 영원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Key Insights]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은(銀) 공급망 붕괴는 반도체·태양광 등 핵심 산업의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또한, 달러 패권의 균열은 원화 가치의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어,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한 안전자산 포트폴리오 재점검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Summary]


인도발 수요 폭증으로 촉발된 '실버 패닉'은 런던의 실물 은(銀) 재고를 고갈시키며 45년 만의 공급 대란을 불렀다. 동시에 중국의 금 매집과 달러 불신은 '골드 랠리'를 일으켜 월가의 항복을 받아냈다. 두 현상은 50년간 이어진 달러 중심 세계 경제 질서의 구조적 균열을 예고한다.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국제 경제 흐름 읽기] '실물' 은(銀)의 경고, '금융' 금(金)의 귀환⋯50년 달러 체제 '균열'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