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분기 VC 투자액 1263억달러 10분기 최고…거래 건수 7551건은 집계 사상 최저
  • 전체 투자의 3분의 1이 오픈AI 단독 딜…AI 제외하면 '제자리걸음'의 착시
  • 아시아 10년 최저·유럽 거래 6년 최저·IPO 줄줄이 연기…엑시트 시장 사실상 동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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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시대의 도래와 함께 채권 시장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면서,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에 '빨간불'이 켜지고 벤처캐피털(VC) 투자 심리마저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2025년 4월 9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환전소에서 한 직원이 미국 달러 지폐를 들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2025년 1분기 전 세계 벤처캐피털(VC) 투자액이 1263억달러(약 179조원)를 기록해 10분기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더인포메이션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있다. 거래 건수는 7551건으로 집계 이래 역대 최저였다. 전체 투자액의 3분의 1 이상이 오픈AI의 역대 최대 민간 투자 라운드(400억달러) 단 하나에서 나왔다. 이 한 건을 제외하면 글로벌 VC 시장은 전년 대비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 KPMG가 4월 16일 발간한 벤처펄스(Venture Pulse) 분기 보고서가 드러낸 불편한 진실이다. 여기에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4.5%를 돌파한 채권시장 충격과 트럼프 관세발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VC 생태계 전반에 구조적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거대한 착시…수치는 강하나 구조는 취약하다


1분기 VC 시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소수의 거대 딜이 다수의 부진을 가린 분기'다. KPMG 보고서는 이번 투자 증가가 오픈AI의 400억달러를 포함한 10억달러 이상 메가딜들에 의해 주도됐다고 명시했다. 앤스로픽 45억달러(두 차례 클로징), 인피니트 리얼리티 30억달러, 바이낸스 20억달러, 그록 15억달러 등이 대표적이다. 이 메가딜들을 제외하면 글로벌 VC 투자의 실질 성장세는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거래 건수의 추락이 이를 증명한다. 4분기 8801건이던 거래 건수가 1분기 7551건으로 14% 급감해 집계 사상 최저를 찍었다. 투자 금액의 증가와 거래 건수의 감소가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은, 자본이 소수의 대형 기업에 극도로 집중되는 반면 중소형 스타트업으로 향하는 자금 흐름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음을 뜻한다. 피치북 데이터는 미국 최대 벤처 생태계에서 1분기 펀딩 라운드의 4분의 1 이상이 이전 라운드보다 낮거나 같은 기업가치로 자금을 조달한 '플랫 라운드' 또는 '다운 라운드'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AI가 시장을 양극화하고 있다. 1분기 글로벌 VC 투자에서 AI 관련 기업이 차지한 비중은 무려 53%에 달했다. AI에서 멀어질수록 투자 환경은 냉랭해진다. 시장이 AI와 비(非)AI로 선명하게 이분화되는 현상이 구체적 수치로 확인됐다.


지역별 균열…아시아 10년 최저, 유럽 거래 6년 최저


지역별 편차는 더욱 선명하다. 미국은 전 세계 VC 자금의 3분의 2 이상을 끌어들이며 압도적 지위를 유지했다. 반면 나머지 지역은 일제히 위축됐다.


아시아·태평양의 VC 투자액은 4분기 189억달러에서 1분기 129억달러로 급감해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중국이 그 핵심이다. 4분기 109억달러였던 중국 VC 투자가 1분기 60억달러로 반토막 났다.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국 스타트업에 대한 외국 자본 유입이 크게 줄었고, 중국 자체 경기 둔화도 겹쳤다.


유럽도 표면적 투자액은 유지됐지만 거래 건수가 6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이미 한 건이 2조원을 넘어서는 메가딜(바이낸스 20억달러)이 지역 합계를 지탱한 것일 뿐, 중소형 딜은 급감했다. 캐나다 VC는 917억달러(약 1조 3000억원)에 그쳐 2018년 이후 본 적 없는 수준까지 추락했다. 미·캐 관세 분쟁의 직격탄이었다.


이 지역 격차는 단순한 경기 사이클로 설명되지 않는다. 관세 정책이 글로벌 VC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하드웨어·제조업 스타트업이 관세 직격탄을 맞고,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는 기업들의 비용 구조가 흔들리면서 투자자들이 해당 섹터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국채의 역습…4.5% 수익률이 VC의 방정식을 바꾼다


4월 9일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장중 4.5%를 돌파하고, 30년물이 사흘간 54bp 급등해 4.92%를 기록한 사건은 VC 시장에 구조적 경고음을 울렸다. 더인포메이션이 4월 16일 이 연결고리를 집중 조명한 이유다.


금리와 VC 투자는 반비례로 움직이는 것이 기본 원리다. 무위험 자산인 국채 수익률이 오르면, 투자자들이 불확실한 VC에 요구하는 프리미엄도 함께 올라간다. VC 펀드가 LP들에게 제공해야 할 수익률의 문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연방준비제도가 작년 9월부터 기준금리를 낮추기 시작해 현재 4.00~4.25%까지 내려왔지만, 관세 충격으로 인한 장기 국채 수익률 급등이 이 완화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이렇다. 투자자들이 국채에서 4.5%의 안정적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7~10년의 긴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VC 투자에는 훨씬 높은 기대 수익률을 요구한다. 그 문턱을 충족하지 못하는 스타트업들은 투자 유치 자체가 벽에 막히게 된다. 이미 1분기 전체 펀딩 라운드의 4분의 1 이상이 다운 라운드였다는 사실이 이 압박을 수치로 증명한다.


KPMG 보고서는 이 상황을 날카롭게 짚었다. "IPO 시장 재개에 대한 기대가 더 멀어지면서, VC 펀드들이 일부 포트폴리오 기업에 IPO 전 추가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투자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다리던 출구가 더 멀어졌으니 버티는 데 자금을 더 써야 한다'는 뜻이다.


엑시트 시장의 동결…유니콘의 '잠긴 가치' 1조달러


스타트업 생태계의 혈액 순환계인 엑시트 시장이 사실상 막혔다. 미국 벤처캐피털협회(NVCA)의 2025년 연감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VC 지원 기업의 전체 엑시트 가치는 980억달러로, 2021년(8420억달러)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미국 전체 VC 운용자산(AUM)이 1조2500억달러에 달하지만, 자금이 투자자에게 실제로 돌아오는 출구가 막혀 있다.


IPO 시장이 특히 심각하다. 핀테크 유니콘 클라나(Klarna)는 오랫동안 상장을 준비해왔지만 4월 관세 발표 이후 일정을 연기했다. AI 인프라 기업 코어위브(CoreWeave)가 지난달 나스닥에 상장했으나 공모가가 희망 범위를 밑돌았다. PwC의 파트너 마이크 벨린은 "관세 충격이 터지자 많은 기업이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고 표현했다.


베인앤컴퍼니 분석에 따르면 VC 펀드레이징은 전년 대비 23% 감소했다. 엑시트가 나오지 않으면 LP들이 새 VC 펀드에 자금을 재공급하기 어렵고, 그러면 펀드레이징이 줄어들고, 투자 여력이 쪼그라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1300개가 넘는 VC 지원 유니콘 기업 중 약 40%가 9년 이상 포트폴리오에 머물러 있다. 이 기업들의 합산 기업가치는 1조달러를 웃돌지만, 투자자에게 실제 현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잠긴 가치'다. IPO 시장이 다시 열리지 않으면 이 가치는 장부 위의 숫자에 머문다.


AI가 버팀목이지만, AI도 취약하다


이 모든 압박 속에서 AI가 유일한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오픈AI, 앤스로픽, 그록, 미스트랄AI 등이 수십억달러 라운드를 잇따라 마감했다. 관세 충격에 비교적 면역인 AI는 VC 자금이 집결하는 가장 확실한 목적지가 됐다.


그러나 AI조차 완전한 안전지대가 아니다. AI 인프라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에 의존한다. 반도체에 대한 섹션 232 조사가 진행 중이고, 대만·한국·일본발 칩 공급망에 고율 관세가 부과될 경우 AI 스타트업의 운영 비용이 급등한다. 크런치베이스는 "관세와 무역 전쟁 격화가 하드웨어 스타트업뿐 아니라 칩과 데이터센터에 의존하는 AI 생태계 전반에 도전과제를 안긴다"고 경고했다. 오픈AI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형사가 수백억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투자를 이미 집행한 상황은 후발 AI 스타트업의 진입 장벽도 높이는 역설을 낳는다.


막힌 수로의 우회로…세컨더리 시장의 부상


IPO도, M&A도 막힌 상황에서 세컨더리 시장이 새 출구로 부상하고 있다. VC 지분을 공개 시장이 아닌 다른 기관 투자자에게 직접 매각하는 방식이다. 2025년 세컨더리 시장은 122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다룰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는 전체 유니콘 가치의 1.9%에 불과하다. 1분기에는 세컨더리 거래가 2022년 이후 처음으로 평균 6% 프리미엄을 받았다.


그러나 이 시장도 이분화됐다. 우량 스타트업은 프리미엄을 받는 반면, 덜 알려진 기업들은 최종 평가가치의 30~60% 할인에 처분된다. 세컨더리 역시 양극화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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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워치(84)] 채권 급등·관세 충격에 VC 생태계 구조적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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