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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_경남 의령(2)] 내 고향 유곡면 21개 마을, 삼남매가 함께 걷다
-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 의령의 산천은 여전히 푸르고 아늑하다. 희망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특별한 여정을 위해 운동화 끈을 묶었다. 이번 신년 기획은 내 고향 유곡면의 21개 마을을 하나하나 밟아보는 '고향 순례'다. 지난 2022년 대한민국 한 바퀴(5,000km)를 완주하고, 제주 올레길과 의령군 전역을 걸었던 발걸음이 이제 가장 익숙하고도 소중한 고향의 품으로 향했다. 편백 숲길 따라 흐르는 삼남매의 '동행' 지난 1월 7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이번 순례는 홀로 걷던 예전의 길과는 결이 달랐다. 남동생과 막내 여동생이 동행을 자처한 것이다. 삼남매가 오롯이 고향 땅을 함께 걷는 것은 생애 처음 있는 일이다. 길 위에서 나눈 해묵은 이야기들은 겨울바람을 녹이기에 충분했고, 끊이지 않는 웃음 속에 삼남매의 우애는 더욱 단단해졌다. 첫날, 고향 집이 있는 마두마을을 출발해 장군당과 구오목마을을 지났다. 동생의 권유로 접어든 임도(林道)에는 울창한 편백 숲이 은은한 향기를 내뿜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행복한 인생으로 가는 길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던 격언처럼, 고요한 숲길은 우리를 구상곡과 신상곡을 거쳐 유년의 추억이 서린 송산초등학교(폐교)로 안내했다. 시장기가 돌 무렵 마주한 동네 중국집 사장님의 군만두 서비스는 고향 인심이 아니고선 맛볼 수 없는 최고의 성찬이었다. 이어 장곡과 남곡, 북창재를 넘어 옥동마을에 이르기까지, 첫날의 발걸음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둘째 날은 유곡면의 상징인 '말(馬)'의 흔적을 찾아 하류로 향했다. 유곡에는 말머리를 닮은 바위가 있는 '마두(馬頭)', 말꼬리에 해당하는 '마미(馬尾, 현 신촌)', 말이 노는 마당인 '마장(馬場)' 등 말과 관련된 지명이 유독 많다. 마장마을을 지나 세간리 망우당 생가에 들어서니 나라를 향한 장군의 기개가 서릿발처럼 느껴졌다. 600년 세월을 견뎌온 은행나무와 의병 창의의 신호탄이었던 현고수(느티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잠시 발을 멈추고 숭고한 역사 앞에 고개를 숙였다. 유곡천의 마른 물길에서 마주한 '고향의 향기' 여정의 마지막 날인 1월 9일, 바람은 한층 차가워졌으나 우리의 의지는 더욱 견고해졌다. 겨울 가뭄에 바닥을 드러낸 유곡천 물길을 따라 엄현마을로 향했다. 1980년대 경지정리 사업으로 사라진 옛 물레방아 자리를 지날 때는 아스라한 향수가 밀려왔다. 이어 남 씨 집성촌인 판곡마을(너실)에 들어서니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낡은 기와지붕들이 마을의 연륜을 증언하고 있었다. 마지막 코스는 세간리에서 정곡면 경계인 막실재까지 이어진 8km의 임도였다. 가파른 오목길에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으나,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따스한 겨울 햇살이 수고를 보상해주었다. 고향 집으로 내려가는 옛길을 따라 마침내 21개 마을 순례의 마침표를 찍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전 마을을 구석구석 걸어서 순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몸소 품은 고향의 숨결은 책이나 영상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2026년 1월, 삼남매가 함께 밟은 유곡의 흙과 햇살, 그리고 고향의 향기는 올 한 해를 버티게 할 따스한 온기로 내 삶의 중심에 오랫동안 빛날 것이다. <글_윤재환 의령예술촌 이사장> <편집자주>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소멸지역 의령은 경남 내륙의 대표적인 농촌 지역으로, 저출산·고령화와 청년층 유출이 장기간 누적되며 인구 감소가 구조화된 곳이다. 행안부는 지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이 높고, 20~39세 청년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구조를 기준으로 인구소멸지역을 지정한다. 의령군은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은 높아,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인구소멸 위험 지표에서 전국 평균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평가됐다. 농업 중심의 산업 구조, 제한적인 양질의 일자리, 교육·의료·문화 인프라 부족 등이 인구 유출을 가속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행정안전부는 이러한 지표를 토대로 인구소멸지역을 지정하고 있으며, 의령군 역시 해당 기준에 부합해 관리 대상에 포함됐다. 군은 귀농·귀촌 유치, 청년 정착 지원, 생활인구 확대, 지역 자원을 활용한 소규모 산업 육성 등 대응책을 추진 중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의령의 인구 문제를 단기 처방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산업·일자리·생활 여건 전반을 아우르는 중장기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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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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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_경남 의령(2)] 내 고향 유곡면 21개 마을, 삼남매가 함께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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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_경남 의령(1)] 의령군 13개 읍면, 195km의 위대한 동행
- 땅이 마땅히 편안한 곳, 의령(宜寧)의 산천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걸었다. 의령군 13개 읍면의 속살을 하나하나 밟아가는 여정은 단순한 보행을 넘어, 고장의 숨결을 재발견하는 구도(求道)의 길과 같았다. 윤재환 의령예술촌 이사장과 김일주 사랑의집 원장은 지난 11월 24일부터 12월 3일까지 총 6일간, 의령의 외곽을 한 바퀴 도는 195km의 대장정을 완수했다. 이들은 늦가을의 정취 속에서 의령의 새로운 풍경을 몸소 체험하며 30만 보의 기록을 남겼다. [편집자 주] 지정면에서 시작된 지구 자전 방향의 순례 여정의 시작은 지난 11월 24일 오전 9시, 지정면 '사랑의 집'에서였다. 이번 행보의 특징은 읍면사무소가 있는 중심지가 아닌, 의령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외곽 순례라는 점에 있다. 지정면을 출발해 낙서, 부림, 봉수, 궁류를 거쳐 의령읍과 자굴산을 돌아 다시 지정면으로 돌아오는, 이른바 지구 자전 방향과 같은 시계 반대 방향의 궤적을 그렸다. 첫날, 임도를 따라 양동과 백산을 거쳐 전설을 품은 박진마을을 지날 때 낙동강은 도도하게 흘렀다. 해 질 무렵 부림면 오소교에서 마주한 신반천의 노을은 첫 여정의 피로를 잊게 할 만큼 장엄했다. 이튿날에는 한지의 고장 봉수면에서 거센 비바람을 뚫고 다현고개를 넘었다. 필자의 고향인 유곡면 마두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가로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으나, 고향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셋째 날과 넷째 날은 추억과 자연의 경계였다. 모교인 의동중학교 뒷산인 거창산을 바라보며 걷는 농로에는 물안개가 커피 향처럼 피어올랐다. 한우산에서 발원한 유곡천을 따라 폐교된 송산초등학교를 지날 때는 소멸해가는 지역의 아픔과 그리움이 교차했다. 이어 의령의 진산인 자굴산(897m) 쇠목재를 넘을 때 내린 비는 깊은 가을의 멋을 더했다. 미수 허목 선생의 자취가 서린 미수서원을 지날 때는 의령의 선비 정신이 발끝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195km 끝에 마주한 동행의 가치와 감격 여정의 후반부는 남강의 물길과 함께했다. 다섯째 날, 화정면 항수고개를 넘어 남강변을 따라 정암진까지 이어지는 길은 의령의 넉넉함을 대변했다. 마지막 날인 12월 3일, 장박마을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기업가들을 배출한 명당의 기운을 밟았다. 삼영그룹 이종환 회장의 생가가 있는 용덕면 운곡마을과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탄생한 정곡면을 지날 때, 의령의 땅이 품은 비범한 에너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호랑이의 꼬리라 불리는 호미마을을 지나 최종 목적지인 지정면 옛 송도교에 다다랐을 때, 6일간의 대장정은 마침표를 찍었다. 13개 읍면을 단 한 곳도 빠짐없이 발로 밟아 연결한 이 기록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유일무이한 행보다. 이번 완답은 혼자만의 승리가 아니었다. 길 위에서 음료와 식사를 건네준 주민들, 문자와 전화로 성원을 보내준 지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긴 시간을 함께 땀 흘린 김일주 원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30만 보의 걸음은 의령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으며, 함께 걷는 이들과의 연대를 확인하는 '위대한 동행'이었다. 늦가을 서늘한 공기 속에 새겨진 195km의 발자취는 이제 의령의 새로운 역사이자 전설로 기억될 것이다. <편집자주>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소멸지역 의령은 경남 내륙의 대표적인 농촌 지역으로, 저출산·고령화와 청년층 유출이 장기간 누적되며 인구 감소가 구조화된 곳이다. 행안부는 지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이 높고, 20~39세 청년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구조를 기준으로 인구소멸지역을 지정한다. 의령군은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은 높아,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인구소멸 위험 지표에서 전국 평균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평가됐다. 농업 중심의 산업 구조, 제한적인 양질의 일자리, 교육·의료·문화 인프라 부족 등이 인구 유출을 가속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행정안전부는 이러한 지표를 토대로 인구소멸지역을 지정하고 있으며, 의령군 역시 해당 기준에 부합해 관리 대상에 포함됐다. 군은 귀농·귀촌 유치, 청년 정착 지원, 생활인구 확대, 지역 자원을 활용한 소규모 산업 육성 등 대응책을 추진 중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의령의 인구 문제를 단기 처방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산업·일자리·생활 여건 전반을 아우르는 중장기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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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_경남 의령(1)] 의령군 13개 읍면, 195km의 위대한 동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