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번호 너머의 분노, 마감 시간 앞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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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 14회. 비밀번호 너머의 분노, 마감 시간 앞의 침묵. 사진=챗GPT5.2 생성 이미지


제14회


미상 씨는 가장 순진한 방법을 선택했다. 이 연립주택을 건너뛰고 다른 배송을 다 마친 뒤 이곳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게 됐으니 그만큼 서둘러 30분 정도를 바싹 당겨야 한다.


다섯 시가 되자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더니 30분 뒤에는 사위가 훤해졌다. 주택가 골목길 네거리에서 주차할 곳을 찾던 마음 급한 미상 씨는 넓은 편의점 앞 출입문 옆에 주차하고 짐을 부렸다. 행인이 없는 시간이라 도로에 종이박스를 내려놓은 뒤 파우치 하나만 들고 다가구주택 4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런 뒤 내려왔더니 불쾌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꼭 여기 주차해야 되겠어요?"


24시간 편의점 조끼를 입은 청년이 종이상자 뒤에 서서 미상 씨를 노려본다.


"여기 마트 앞인 걸 알면서도 이래요?"


사방 도로변에는 주차한 자동차로 빈틈이 없었다. 지금 이 시각에 편의점 출입문 앞도 아니고 한 걸음 떨어진 유리창 아래 주차한 승용차를 불편하게 여길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청년은 찡그린 이맛살을 더욱 구기며 벌레 보듯 처참한 눈빛으로 미상 씨를 대했다. 쿠팡 카플렉서가 부끄럽다거나 천대받을 만한 직업이라 생각지 않는 미상 씨는 상대방의 심사나 그 저간 사정을 파악지 않고 여유 있게 웃었다. 청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층까지 뛰어올라갔다 왔더니 숨이 차네요. 숨 좀 돌리고 합시다."


미상 씨의 여유만만한 대답에 화가 난 모양이다. 대갓집 대문간에 나전을 편 장돌뱅이 대하는 청지기 놈처럼 청년은 눈을 부라리며 호령을 했다.


"치워요. 치워!"


까닥거리는 손가락으로 미상 씨 승용차의 짐칸과 도로에 놓인 종이상자를 가리켰다. 그 순간 미상 씨는 모욕감을 감지했다. 자신이 아니라 쿠팡 배송상품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젊은 친구의 오만불손 때문이었다.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으나 참았다. 시간을 줄여야 하는 절체절명의 이유가 있었고 쿠팡 배송상품을 사이에 두고 예의범절을 가리기가 창피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종이상자를 다시 승용차 짐칸에 싣고 해치를 내리지 않은 채 승용차를 조금 더 전진했다. 주차한 승용차 뒤로 돌아온 미상 씨는 편의점 쪽을 돌아보지 않고 종이상자를 들어 내렸고 그 배송상품을 안고 골목 안으로 달려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뒤돌아보면 나는 어쭙잖은 심야배송 배달원에 그치고 만다. 분하더라도 억울하더라도 앞으로만 달려가야 마감 시간을 지킬 수 있다.


불쾌한 일은 또 발생했다. 두 시간 전 건네 뛰었던 연립주택 현관으로 돌아온 미상 씨는 어쩔 수 없이 비디오 도어폰을 이용해 주문자 집으로 전화를 했다. 마감 시간이 촉박했을뿐더러 추운 겨울날 새벽인지라 출입하는 사람을 기다릴 수 없었다.


"쿠팡입니다."


시작은 누구세요?하고 점잖게 묻더니만 이쪽이 쿠팡 배송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도어폰 저편의 여인은 마구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두 시간 만에 되돌아온 이쪽 사정은 전혀 고려치 않고 저쪽에선 지랄 지랄을 한다.


"이 시간에 도어폰 누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도대체 예의라는 걸 아는 거야? 뭐야?"


"마감 시간이 다 됐습니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세요."

미상 씨는 지금 시비와 예의를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바뀐 공동현관 비밀번호만 알면 그만이었기에 화를 내는 저편의 여인을 달랬다.


"변경된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세요."


"우리 아이 놀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아주 재수 없어 죽겠네."


우리 아이란 애완견을 가리키는 말인 듯했다. 깽깽대고 짖어대는 개소리가 들리고 아들인가 딸인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젊은이의 음성이 나타나 변경된 비밀번호를 불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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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미상 씨의 즐거운 쿠팡(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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