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탠퍼드 연구진, 쥐 뇌 시각 피질 AI 모델 개발 성공
- 실제 뇌처럼 반응 예측…뇌 연구 효율성 극대화 기대
- 기존 AI 모델 한계 넘어…다양한 시각 정보에 대한 반응 예측
- 뉴런 연결 방식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 제시

눈을 감고 뇌 속을 탐험하는 상상을 해보자. 복잡하게 얽힌 신경망 속에서 수많은 정보들이 빛의 속도로 오간다. 인간은 오랫동안 이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과학자들이 인공지능(AI)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이용하여 뇌의 비밀을 풀 실마리를 찾아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쥐의 뇌를 똑같이 복제한 가상 세계, 즉 '디지털 트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최근 스탠퍼드 의과대학 연구진과 공동 연구팀은 AI 모델을 활용해 쥐 뇌의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특정 부위를 완벽하게 복제하는 데 성공하며 뇌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놀라운 디지털 쌍둥이는 실제 쥐들이 영화를 볼 때 뇌의 시각 피질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양의 활동 데이터를 학습했다. 그 결과, 새로운 영상이나 사진이 주어졌을 때 수만 개에 달하는 뇌세포, 즉 뉴런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뇌의 작동 방식을 그대로 옮겨놓은 디지털 트윈은 과학자들이 뇌의 복잡한 내부 구조와 기능을 훨씬 쉽고 효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번 연구의 핵심 인물이자 스탠퍼드 의과대학 안과 교수인 안드레아스 톨리아스 박사는 "만약 우리가 뇌의 모델을 아주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는 우리가 훨씬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장 유망한 결과를 보이는 실험들을 실제 뇌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4월 9일,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연구의 주 저자는 베일러 의과대학의 의대생인 에릭 왕 박사다.

디지털 트윈, 뇌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지금까지 개발된 시각 피질 AI 모델들은 학습 데이터에서 보았던 특정 종류의 자극에 대해서만 뇌의 반응을 흉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개발된 모델은 이전 모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모델은 다양한 종류의 새로운 시각 정보에 대해서도 뇌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할 수 있다. 심지어 각 뉴런의 미세한 해부학적 특징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톨리아스 박사는 "결국에는 인간 뇌의 적어도 일부분이라도 디지털 트윈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이번 연구의 잠재력을 강조했다.
이 새로운 모델은 '파운데이션 모델'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종류의 AI 모델에 속한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한 후, 습득한 지식을 새로운 작업이나 새로운 형태의 데이터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모델을 말한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능력을 '훈련 분포 외부로 일반화'라고 표현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예로는 챗GPT를 들 수 있다. 챗GPT는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하여 새로운 텍스트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톨리아스 박사는 "여러 면에서 지능의 핵심은 강력하게 일반화하는 능력이다"라며, "궁극적인 목표, 즉 우리가 도달해야 할 성배는 바로 학습한 데이터의 범위를 넘어서는 상황에서도 일반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쥐의 뇌를 학습한 AI 모델, 비결은 '액션 영화'
새로운 AI 모델을 훈련시키기 위해 연구팀은 먼저 실제 쥐들이 영화를 시청하는 동안 뇌 활동을 기록했다. 흥미롭게도 쥐들에게 보여준 영화는 사람들이 보는 일반적인 영화였다. 연구팀은 이 영화들이 쥐가 실제 자연 환경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과 최대한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톨리아스 박사는 "쥐에게 현실적인 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쥐를 위한 할리우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액션 영화가 그나마 쥐들이 볼 만한 움직임을 많이 담고 있어 선택되었다.
쥐는 사람의 주변 시야와 비슷한 저해상도 시력을 가지고 있어, 세부적인 모습이나 색깔보다는 주로 움직임을 감지한다. 톨리아스 박사는 "쥐는 움직임을 좋아하고, 움직임은 쥐의 시각 시스템을 매우 강하게 활성화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액션이 많은 영화를 쥐들에게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의 영화 시청 실험을 진행하며, 총 8마리의 쥐가 '매드맥스'와 같은 액션 영화의 짧은 장면들을 시청하는 동안 900분 이상에 걸쳐 뇌 활동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카메라를 이용하여 쥐들의 눈 움직임과 행동 변화를 꼼꼼하게 관찰했다.
연구팀은 이렇게 모아진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하여 핵심 AI 모델을 훈련시켰고, 이 모델에 약간의 추가 학습을 시키는 방식으로 각 개별 쥐의 특성을 반영하는 맞춤형 '디지털 트윈'을 만들 수 있었다.

정확한 예측 넘어 뇌 구조까지 파악
이렇게 만들어진 디지털 트윈들은 실제 쥐들이 새로운 영상이나 정지 이미지를 보았을 때 나타내는 신경 활동을 매우 흡사하게 흉내 낼 수 있었다. 톨리아스 박사는 이처럼 디지털 트윈이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방대한 양의 학습 데이터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 세트로 훈련되었기 때문에 예측 정확도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강조했다.
비록 신경 활동 데이터만을 이용하여 훈련되었지만, 이 새로운 모델들은 다른 종류의 데이터에도 적용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한 마리의 특정 쥐의 디지털 트윈은 시각 피질에 있는 수천 개의 뉴런들의 해부학적 위치와 세포 종류는 물론, 이들 뉴런 사이의 연결망까지 정확하게 예측해냈다.
연구팀은 이러한 예측 결과가 실제 쥐의 시각 피질을 초고해상도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이미지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비교하여 검증했다. 이 전자현미경 이미지는 쥐의 시각 피질 구조와 기능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자세하게 매핑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MICrONS' 프로젝트로 알려진 이 연구 결과 역시 '네이처'에 동시에 발표되었다.
뇌 연구의 '블랙박스'를 열고 미래를 보다
디지털 트윈은 실제 쥐의 수명을 훨씬 뛰어넘어 존재하며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사실상 동일한 동물에 대해 횟수 제한 없이 무한에 가까운 실험을 수행할 수 있다. 기존에는 몇 년이 걸렸을 실험을 단 몇 시간 만에 완료할 수 있으며, 수백만 건의 실험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가능해져 뇌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지능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한 연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톨리아스 박사는 "우리는 말하자면 뇌라는 '블랙박스'를 열어 개별 뉴런 또는 뉴런 집단 수준에서 뇌가 어떻게 정보를 부호화하고 함께 작동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새로운 모델들은 이미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네이처'에 동시에 발표된 또 다른 관련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디지털 트윈을 이용하여 시각 피질의 뉴런들이 서로 연결을 형성할 때 어떤 기준으로 다른 뉴런들을 선택하는지 밝혀냈다.
과학자들은 이전부터 비슷한 기능을 하는 뉴런들이 마치 사람들이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서로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디지털 트윈 연구를 통해 어떤 유사성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가 새롭게 밝혀졌다. 뉴런들은 시각 공간의 같은 영역에 반응하는 뉴런들보다, 예를 들어 파란색과 같은 동일한 시각적 자극에 반응하는 뉴런들과 더 잘 연결되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톨리아스 박사는 "이는 마치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기준으로 친구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며, "우리는 뇌가 어떻게 조직되는지에 대한 훨씬 더 정확한 규칙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자신들의 모델링 기술을 다른 뇌 영역과 더 나아가 인지 능력이 더 발달한 영장류를 포함한 다른 동물들에게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톨리아스 박사의 말처럼, 인간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을 만들어내는 미지의 영역, 뇌. 이번 연구는 그 심연을 향해 내딛은 용감한 발걸음이다. 작은 쥐의 뇌에서 시작된 디지털 트윈 기술이 언젠가 인간의 뇌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아가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선사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AI가 그려낼 뇌 연구의 눈부신 미래는 이미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연구에는 괴팅겐 대학교와 앨런 뇌 과학 연구소의 연구진도 참여했다.
이번 연구는 인텔리전스 고급 연구 프로젝트 활동(Intellig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ctivity), 국립 과학 재단 뉴로넥스 보조금(National Science Foundation NeuroNex grant),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국립 신경 질환 및 뇌졸중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Neurological Disorders and Stroke, 보조금 번호 U19MH114830), 국립 눈 연구소(National Eye Institute, 보조금 번호 R01 EY026927 및 시각 연구 핵심 보조금 T32-EY-002520-37), 유럽 연구위원회(European Research Council) 및 독일 연구 재단(Deutsche Forschungsgemeinschaft)의 지원을 받았다.
스탠퍼드 메디슨에 대하여
스탠퍼드 메디슨은 스탠퍼드 의과대학과 성인 및 소아 의료 서비스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통합 학술 의료 시스템이다. 이들은 협력 연구, 교육 및 환자 진료를 통해 생물의학의 모든 잠재력을 활용하고 있다. 더 자세한 정보는 med.stanford.edu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