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퍽한 골목의 시학-묵호 '논골'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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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 어판장 1970년대. 사진=동해문화원 DB

 

질퍽한 골목의 시학

-묵호 '논골'을 아세요?

 

 

이름은 땅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다.

 

마을 이름, 골목 이름, 고개 이름. 행정이 붙여주는 이름이 있고 삶이 스스로 만드는 이름이 있다. 앞의 이름은 지도 위에 있고 뒤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안에 있다. 지도가 바뀌어도 입안의 이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지명의 질긴 생명력이다.

 

묵호진동의 언덕 골목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논골'이라 불렀다. 공식 기록에도 구전에도 이 이름은 남아 있다. 동해시 지명지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산 중턱에 논이 있어서 생긴 이름.' 그러나 골목에서 오래 살아온 어르신들의 구전은 조금 다르다. 마을 절반은 뱃사람, 절반 위는 덕장으로 생계를 유지한 마을이라 '질퍽한 흙길 때문에 논골마을이라 불렸다.' 두 가지 해석 중 어느 쪽이 맞는가를 따지는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두 해석 모두 이 땅의 몸을 읽은 결과라는 사실이다.

 

물이 흐르는 골목

 

논골 골목이 왜 질퍽했는지를 이해하려면 언덕 꼭대기를 먼저 봐야 한다. 지금은 대부분 장소를 옮기거나 사라진 곳이지만 언덕 가장 높은 곳에는 덕장이 있었다. 오징어와 명태를 말리는 곳. 어부들이 잡아 온 생선을 묵호항에서 덕장까지 나르는 일이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바지게에 지거나 빨간 고무대야에 담아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짐은 무겁다. 그 과정에서 생선 더미에서 떨어지는 바닷물이 골목을 적셨다.

 

오징어는 특히 물기가 많다. 막 잡아 올린 오징어를 담은 대야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가파른 비탈을 오를 때, 흔들릴 때마다 바닷물이 튀고 흘렀다. 하루에 한 번이 아니었다. 풍어의 계절에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오르내렸다. 골목의 흙은 늘 젖어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젖어 있었다. 그것이 '논골'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이름 안에 당시 마을의 경제 전체가 들어 있다. 골목이 질퍽하다는 것은 그만큼 생선이 많이 오르내렸다는 뜻이고, 생선이 많이 오르내렸다는 것은 어획이 풍성했다는 뜻이고, 어획이 풍성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름 속에 풍요와 고단함이 함께 녹아 있다.

 

장화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도시의 언어

 

그래서 생긴 말이 있다. 앞서도 인용했지만, 이 말은 한 번으로 부족하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웃었다. 그러다가 멈췄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묵호에서만 통용되는 실용의 언어였다. 신발이 방수되지 않으면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골목. 젖은 신발로 하루를 보내면 발이 무르고 병이 든다. 장화는 이 마을에서 생존 도구였다.

 

그리고 이 말은 동시에 비틀린 유머다. 아내보다 장화가 더 필요하다는 과장은, 이 마을에서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웃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묵호 사람들은 그렇게 유머를 썼다. 슬프거나 고단한 것을 직접 말하지 않고, 과장하거나 뒤집어서 웃음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이 마을의 언어 습관이고 생존 미학이다.

 

논골담길 곳곳에 장화 그림과 장화 소품이 등장하는 것은 이 마을이 통과한 역사의 물질적 상징이다. 아이가 신던 작은 장화에 들꽃을 심어놓은 담벼락 위의 풍경은, 그 장화가 더 이상 질퍽한 골목을 걸을 필요가 없어진 시대를 살고 있는 마을이 과거에 바친 조용한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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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항에서 논골 언덕 꼭대기에 있는 덕장까지 생선을 나르기 위해 장화를 신고 바지게에 생선을 가득 싣고 질퍽한 논골을 오르는 주민. 사진=동해문화원 DB


논골담길이라는 이름을 정하던 날이 생각난다. 2010년 봄, 한국문화원연합회 공모사업에 응모하기로 결심하고 지역 작가들과 머리를 맞댔다. 마을 이름이 논골이니 거기서 시작하자는 것은 금방 합의됐다. 문제는 그 뒤였다.

 

'논골길'은 너무 밋밋했다. '논골마을길'은 길다. '논골산책로'는 이 마을의 결을 배신하는 이름이었다. 산책은 여유 있는 자들의 행위다. 이 골목은 여유가 아니라 생존으로 오르내린 사람들의 땅이다. 산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그 역사를 지우는 일이었다.

 

글 담당으로 참여한 김정호 작가와 긴 논의 끝에 '담(談)'이라는 글자를 끌어왔다. 이야기가 있는 길. 담장의 담(墻)이 아니라 이야기의 담(談).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소리로 읽으면 '담'은 담장으로도, 이야기로도 들린다. 이 중의성이 좋았다. 담장이 있는 골목이고, 이야기가 있는 골목이고, 그 이야기들이 담장 위에 그림으로 새겨지는 골목. 세 가지 뜻이 하나의 소리 안에 겹쳐 있었다.

 

논골담길. 입에 올려보니 발음이 자연스러웠다. 기억하기도 쉬웠다. 취재 기자들이 반응했다. "길 이름이 왜 이래요?"가 아니라 "이름이 좋네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이름은 첫 번째 기획이다. 좋은 이름은 설명하지 않아도 방향을 가리킨다.

 

 

논골 골목은 좁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어려운 곳이 많다.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간다. 보면 어느새 다른 골목으로 빠져 있다. 미로처럼 얽혀 있다. 처음 온 사람은 길을 잃는다.

 

나는 이것이 결점이 아니라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예측을 잃는다는 것이다. 예측을 잃으면 감각이 살아난다. 다음 모퉁이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발걸음이 느려진다. 느린 발걸음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한다.

 

논골담길을 처음 기획할 때 코스를 명확하게 표시하지 말자는 의견이 있었다. 지도를 주되 헤매도록 내버려두자는 것. 나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완성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완성되는 과정을 돕는 것. 그것이 이 마을이 여행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었다.

 

실제로 논골담길에서 가장 좋은 장면을 만나는 사람들은 코스를 벗어난 곳에서 그것을 만난다. 해설사가 안내하는 경로 밖에 있는 담벼락, 예상치 못한 골목 끝에서 불쑥 열리는 묵호항의 전망. 길을 잃어야 찾게 되는 것들이 있다. 논골이 바로 그런 종류의 장소다.

 

질퍽함의 미학

 

물기가 있는 땅은 생명력이 있다. 건조한 땅에서는 풀이 잘 자라지 않는다. 질퍽한 곳에서 식물이 무성해진다. 논골이 질퍽했던 것은 생선의 물기 때문이었지만, 그 질퍽함은 동시에 이 마을이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마을이 쇠퇴하면서 덕장이 사라지고 골목을 오르내리는 지게꾼이 사라졌다. 골목은 건조해졌다. 비가 올 때만 질퍽해지고, 비가 멈추면 곧 말라버리는 보통의 골목이 됐다. 사람이 줄고 집이 비면서 마을은 점점 건조해졌다.

 

논골담길이 시작됐을 때 골목에 다시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작가들이 왔고 사진가들이 왔고 관광객들이 왔다. 골목이 다시 소리를 냈다. 발소리와 말소리와 웃음소리. 그것은 오징어 물기와는 다른 질퍽함이었지만, 마을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어떤 수분이었다. 문화 기획이 마을에 공급하는 것이 결국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아카이브로서의 지명

 

지명은 가장 오래된 형식의 아카이브다. 문자가 생기기 전부터 사람들은 장소에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 안에 지형이 있고 역사가 있고 삶의 방식이 있다. 논골이라는 이름 안에 오징어 물기로 젖은 골목이 있고, 지게를 진 남자들이 있고, 빨간 고무대야를 이고 오른 어머니들이 있다.

 

논문을 쓰면서 나는 지역문화 아카이브의 공공영역이라는 주제를 오래 붙들고 있었다. 아카이브가 공공의 것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전문가만 접근할 수 있는 보관소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를 찾아 읽을 수 있는 살아 있는 기록이 되려면.

 

논골이라는 이름은 그 답의 일부다. 별도의 데이터베이스가 없어도,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이 없어도, 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 역사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논골담길이라는 길 이름 속에 새겨지고, 해설사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벽화와 이야기로 거듭 태어날 때, 지명 아카이브는 공공의 것이 된다.

 

이름이 먼저 왔다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돌아보면 이름이 먼저 온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야기 발굴이 있었고, 먼저 마을의 삶이 있었고, 그것을 담을 그릇으로 이름이 만들어졌다. 역순이 아니었다. 이름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내용을 채운 것이 아니었다.

 

많은 마을 재생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름이 먼저 생기는 것이다. 00 아트빌리지, 00 감성마을, 00 문화거리. 이름이 그럴싸하면 마을의 현실이 거기 맞춰져야 한다는 압력이 생긴다. 마을은 이름의 틀에 끼워 맞춰지고, 결국 이름이 마을을 배신하거나 마을이 이름을 배신하는 사태가 온다.

 

 

논골담길은 반대였다. 마을이 먼저였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먼저 모였고, 그 이야기들이 어떤 성격인지를 확인한 뒤에야 이름을 붙였다. 그러니 이름이 마을을 배신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그 이름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논골은 오래전부터 그들의 입안에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 '담길'을 붙인 것뿐이었다.

 

 

논골 골목의 흙이 마르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집이 더 비고 사람이 더 떠나면, 언젠가는 오르내리는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름은 남는다. 논골이라는 이름이 남는 한, 한때 이 골목이 오징어 물기로 질퍽했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문화기획이 할 수 있는 일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을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시는 흥하고 쇠한다. 그것이 도시의 운명이다. 그러나 이름을 새기는 것,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 그림으로 남기는 것은 가능하다. 묵호가 언젠가 지금과 전혀 다른 도시가 되더라도, 논골담길이라는 이름이 살아 있는 한 이 질퍽한 골목의 기억은 살아 있다.

 

 

이름이 집보다 오래 살고, 사람보다 오래 산다. 논골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이 마을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필자 소개>


조연섭

-문화 기획자, 브치 작가, 논골담길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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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 사용 설명서>를 이끄는 조연섭 문화기획자. 사진=프로필

 

조연섭 작가는 숨겨진 원형을 발굴해 현대적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문화 기획자이자 작가다. 언더그라운드 방송 DJ와 아나운서를 거친 방송인 출신으로, 2004년 동해문화원 공채 사무국장으로 임용 한국문화원국장협의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하고 2025년 12월30일 퇴직했다. 그는 그동안 지역의 역사와 유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구 소멸 시대의 실천적 해법을 제시해 왔다.


그의 기획력은 공간 재생과 로컬 브랜딩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묵호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청와대에서 창조경제 성공 사례를 발표하며 문화 담론을 주도했다. 또한, 방치된 양조장을 커뮤니티 거점으로 복원한 '강원막걸리학교(막걸리 익는 홍월평)' 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와 공동체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구축했다.


예술적 감각 또한 남다르다. 국가유산청 공모로 뮤지컬 '동해의 선선 심동로'와 '동해랑'을 기획하여 지역민에게는 자긍심을, 관광객에게는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로컬 콘텐츠의 전형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원상 '창의 인재상'을 받았으며, 전국 문화원 임직원을 대상으로 추진한 지역 문화경영 고급 아카데미 전국 1위와 함께 문체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공론장 '논골담길 커먼즈'와 함께 24시 문화 순환 체계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브런치 작가로서 《논골담길》, 《맨발 걷기》 등의 브런치 북을 발간하며, 현장의 기록을 글에 담아 사람과 공간을 잇는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조연섭 문화기획자 tbntv@naver.com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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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89] 묵호 사용 설명서(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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