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세포 조상의 유전자, 현대 생명과학에 새 길 열다
- 줄기세포의 기원부터 재생의학의 미래까지, 고대 유전자 탐구
10억 년 전 지구를 지배했던 단세포 생물의 고대 유전자가 오늘날 생쥐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과학계를 놀라게 한 이번 연구는 줄기세포와 진화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며 재생의학의 미래를 열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받고 있다.
홍콩 대학교와 독일 막스 플랑크 육상 미생물학 연구소의 공동 연구진은 단세포 생물에서 유래한 유전자를 생쥐 세포에 도입해 줄기세포를 생성했으며, 이를 통해 살아있는 생쥐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사이언스 얼럿(Science Alert)과 IFL사이언스 등 다수 외신이 전했다.
연구팀은 편모조류에서 발견되는 유전자를 쥐의 유전자와 교환함으로써 두 편모조류가 기능적으로 얼마나 유사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홍콩 대학의 야 가오 박사와 데이지린 세나 탄, 독일 막스 플랑크 육상 미생물학 연구소의 마티아스 기르빅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복제된 쥐의 줄기세포를 배양하고 게놈을 재프로그래밍하여 포유류의 Sox2 유전자를 동물과 가까운 단세포 생물인 동정편모충류[choanoflagellate, 후생동물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여겨지는 생물로, 긴 편모(flagellum)를 가지고 있으며, 이 편모 주변을 둘러싼 깃(collar) 모양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게 특징] Sox 유전자로 대체해, 연구를 진행했다. 이 세포를 배아 쥐(마우스) 배반포에 주입한 다음, 임신한 쥐 대리모에 이식하는 임신, 출산, 양육 환경에서 배양했다.
영국 퀸 메리 대학의 유전학자 알렉스 드 멘도사는 사이언스얼럿에 "단세포 친척인 쥐에서 얻은 분자 도구를 사용해 성공적으로 쥐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는 거의 10억 년 전의 진화 과정에서 놀라운 기능의 연속성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멘도사는 "이 연구는 줄기세포 형성에 관여하는 핵심 유전자가 줄기세포 자체보다 훨씬 일찍 생겨났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데, 아마도 우리가 보는 다세포 생명체의 길을 닦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대 유전자가 오늘날 동물 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실증한 이번 연구는 줄기세포의 기원과 재활용 메커니즘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고대 유전자, 다세포 생물 진화의 토대가 되다
약 10억 년 전, 지구에는 동물이나 식물 같은 다세포 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지구를 지배하던 단세포 생물 가운데 동정편모충류(choanoflagellates)는 오늘날 동물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여겨진다. 동정편모충은 현미경으로 관찰할 정도로 작은 단세포 생물이지만, 이들의 유전체에는 포유류 줄기세포 형성을 돕는 것으로 알려진 Sox와 POU라는 유전자의 초기 버전이 포함되어 있다.
기존에는 줄기세포가 다세포 생물에서만 진화했을 것이라 여겨졌지만, 이번 연구는 단세포 생물에도 줄기세포 형성에 중요한 유전자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들이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재활용되고 확장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고대 유전자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생쥐 탄생의 비밀, 동정편모충류 유전자
연구진은 동정편모충류의 Sox 유전자를 생쥐 세포에 도입해 생쥐의 Sox2 유전자를 대체했다. Sox2는 포유류 줄기세포의 다능성(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유전자다. 놀랍게도 동정편모충의 Sox 유전자 역시 생쥐 세포에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동물은 '다능성'이라고 알려진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능성은 배아 줄기세포가 분화하여 완전히 발달된 유기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조직으로 발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동물에 인접한 미생물에 대한 이전 연구에 따르면 다능성의 기원은 다세포성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동물의 진화 결과가 아니라 동물 진화의 원동력 중 하나일 수 있다.
생쥐 세포는 동정편모충 유전자의 도움으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상태로 전환되었으며, 이를 발달 중인 생쥐 배아에 주입한 결과 키메라 생쥐(마우스)가 탄생했다. 키메라 생쥐는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두 세포 집단이 공존하는 동물로, 이번 실험에서는 줄기세포의 영향을 받아 맨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검은 털 반점과 어두운 눈 등의 특징을 가진 생쥐가 만들어졌다.
이 발견은 단세포 생물의 간단한 유전자가 다세포 생물의 복잡한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고대 유전자, 재생의학의 미래를 열다
줄기세포는 손상된 조직을 복원하거나 질병 치료에 사용될 수 있는 '만능 세포'로, 재생의학의 핵심이다.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山中 伸弥) 박사가 2012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연구를 통해, 일반 세포를 줄기세포로 변환하는 기술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Sox와 POU 유전자를 포함한 4가지 인자를 활용해 줄기세포를 유도했다.
이번 연구는 야마나카 박사의 연구를 기반으로 더 나아가, 고대 단세포 생물의 유전자를 활용해 줄기세포를 생성했다. 이는 줄기세포 형성 메커니즘이 생명 진화 초기 단계부터 존재했음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진화에서 재활용된 유전자, 재생의학의 열쇠
연구진은 동정편모충 유전자들이 초기 생명체의 기본적인 세포 기능을 조절하는 역할을 했으며, 이후 다세포 생물이 출현하면서 더 복잡한 기능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를 "10억 년에 걸친 기능적 연속성"이라 설명하며, 진화생물학과 재생의학이 맞닿은 접점임을 강조한다.
홍콩대 랄프 야우흐(Ralf Jauch) 박사는 "고대 유전자 연구는 다능성 메커니즘을 더욱 정밀하게 조정하고 최적화할 방법을 제시할 것"이라며, 동정편모충 유전자의 합성 버전을 개발해 기존 유전자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번 연구는 고대 단세포 생물이 현대 생명공학에 얼마나 큰 영감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단세포 생물의 유전자가 다세포 생물의 기원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줄기세포 연구와 재생의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줄기세포와 진화라는 두 축이 만들어갈 생명과학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게재됐다.